11월의 불곡산 - 원인숙(1959~ ) 11월의 불곡산 - 원인숙(1959~ ) 석양을 받으며 막바지 단풍이 남김없이 타오르더니 마침내 그 빛깔들을 모두 거두었다 사랑도 그리움도 이젠 쉬어야 할 시간 안으로 더 깊이 채찍질하며 침묵을 시작하는 나무들 산등성이를 오르는 바람도 말이 없다 타올랐다 식어간다는 것. 더 뜨겁게 타.. 시가 있는 아침 2014.11.11
달밤에 술 마시기 /정약용(1762~1836) 정약용(1762~1836) [LA중앙일보] 발행 2014/09/04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4/09/03 21:50 여보게 달을 보며 술 마시고 싶으면 달이 뜬 오늘 밤을 놓치지 말게 만일 내일 밤으로 미룬다면 바다에서 구름이 떠오를지도 모르고 그 다음날 밤으로 또 미룬다면 둥근 달이 이미 이지러질 것이네 남산 도서관.. 시가 있는 아침 2014.11.11
어머니의 우물 - 김유선(1950~ ) 어머니의 우물 - 김유선(1950~ ) 어머니는 가운데 물이 좋은 거라며 바가지 휘휘 저어 탐방, 한가운데 물만 뜨셨다 바가지 바닥 손바닥으로 한 번 더 닦고 탐방탐방 중심으로만 바가지를 넣어 좋은 물만 길었다 나도, 중심으로 가고 싶다 허리를 굽히면, 중심은 너무 멀고 내 팔은 너무 짧다 .. 시가 있는 아침 2014.11.08
동행 - 맹문재(1963~ ) 동행 - 맹문재(1963~ ) 작은애가 미끄럼틀에서 손을 삐어 동네 정형외과에 데려갔다가 나의 왼손도 엑스레이를 찍어 보았다 돌이 들어 있네요 중학생 시절 친구가 등 뒤에서 떠미는 바람에 깬 돌이 널린 신작로에 넘어져 부랴부랴 헝겊으로 동여맨 적이 있는데… … 중지 끝에 돌이 들어 있.. 시가 있는 아침 2014.11.08
나비 - 송찬호(1959~ ) 나비 - 송찬호(1959~ )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시의 꽃은 비유다. 따라서 시인의 중요한 임무 가.. 시가 있는 아침 2014.11.08
외가 - 유형진(1974~ ) 외가 - 유형진(1974~ ) 솜사탕 기계에서 설탕 실이 풀어져 나무 막대에 모이듯 손주, 증손주들이 외할머니 집 툇마루에 모인다. ‘달리아’와 ‘백일홍’과 ‘맨드라미’가 성한 계절. ‘토실’, ‘토돌’이란 이름의 붉은 눈 흰토끼들이 함께 한 가족 캠프에 가겟집에서 사 온 아이스크림.. 시가 있는 아침 2014.11.08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1952~ )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1952~ )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 시가 있는 아침 2014.11.08
사랑이란 죽은 이도거의 소생시킬 수 있는 것- 에밀리 디킨슨 사랑이란 죽은 이도 거의 소생시킬 수 있는 것 - 에밀리 디킨슨(1830~ ), 강은교 번역 사랑이란 죽은 이도 거의 소생시킬 수 있는 것 난 생각하지, 그것마저 이 거인으로부터 멀리할 수 있을지 육체가 만일 동등하다면. 허나 사랑이란 피곤해지면 잠자야 하는 것 또 굶주리면 먹어야 하는 것 .. 시가 있는 아침 2014.11.08
농담 /이문재 농담 - 이문재(1959~ )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시가 있는 아침 2014.11.08
오리 한 줄 / 신현정 오리 한 줄 - 신현정(1948~2009) 저수지 보러 간다 오리들이 줄을 지어 간다 저 줄에 말단(末端)이라도 좋은 것이다 꽁무니에 바짝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 한 줄이 된다 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 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 그저 뒤따라가면 된다 뛰뚱뛰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