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오리 한 줄 / 신현정

푸른물 2014. 11. 4. 07:24

오리 한 줄 - 신현정(1948~2009)


저수지 보러 간다

오리들이 줄을 지어 간다

저 줄에 말단(末端)이라도 좋은 것이다

꽁무니에 바짝 붙어 가고 싶은 것이다

한 줄이 된다

누군가 망가뜨릴 수 없는 한 줄이 된다

싱그러운 한 줄이 된다

그저 뒤따라가면 된다

뛰뚱뛰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급기야는 꽥꽥대고 싶은 것이다

오리 한 줄 일제히 꽥꽥꽥


‘ㄲ’으로 시작하는 6가지를 갖추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세간의 말이 생각나네요. 꿈(비전), 깡(용기), 꾼(전문성), 꼴(외모), 끼(재능) 그리고 끈(연줄)이 그것이라지요. 다 좋은데 마지막 끈은 씁쓸하지요. 줄서기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니까요. 소신도 양심도 자존심도 다 버리라는 말이니까요. ‘저수지 보러’ 가는 저 오리들의 행렬을 좀 보세요. ‘뛰뚱뛰뚱하면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급기야는 꽥꽥대/’는 오리들의 줄서기를요. ‘싱그러운’ ‘저 줄에 말단이라도’ 좋으니 따라가고 싶지요. 어떤 뒷거래도 어떤 암투도 없는 눈부신 오리 한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