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달밤에 술 마시기 /정약용(1762~1836)

푸른물 2014. 11. 11. 07:10

정약용(1762~1836)

[LA중앙일보]    발행 2014/09/04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4/09/03 21:50

 

 

여보게 달을 보며 술 마시고 싶으면

달이 뜬 오늘 밤을 놓치지 말게

만일 내일 밤으로 미룬다면

바다에서 구름이 떠오를지도 모르고

그 다음날 밤으로 또 미룬다면

둥근 달이 이미 이지러질 것이네

남산 도서관 입구 버스 정류장 근처에 다산(茶山) 정약용 동상이 서 있다. 다산이 왼쪽으로 조금 눈을 돌린다면, 괴테 인스티튜트(독일문화원) 건물이 보일 것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정약용은 저술가.과학자.시인으로서 괴테와 견줄 만한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다산을 생각하면 근엄한 목민관이나 아이디어가 풍부한 실학자의 면모가 떠오르지만, 달밤에 술 마시는 선비의 호방한 풍도를 아울러 지녔던 것 같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훈계는 자주 듣는다. 그러나 오늘 마셔야 할 술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씀은 흥취를 아는 큰 선비만이 들려 줄 수 있다. 다산은 벌써 200년 전에 '현재를 즐기라(carpe diem)'고 했다. 우리는 아직도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김광규·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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