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송찬호(1959~ )
나비는 순식간에
째크나이프처럼
날개를 접었다 펼쳤다
도대체 그에게는 삶에서의 도망이란 없다
다만 꽃에서 꽃으로
유유히 흘러 다닐 뿐인데,
수많은 눈이 지켜보는
환한 대낮에
나비는 꽃에서 지갑을 훔쳐내었다
시의 꽃은 비유다. 따라서 시인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말을 새롭게 하고, 이미지를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이 날개를 접었다 펴는 나비의 모습을 잭나이프로 비유한 것은 낯설고 신선하다. 칼날이 손잡이에서 나와 펴지는 것과 같은 나비의 날갯짓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잭나이프의 잭(jack)이 ‘남자, 강하다, 크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듯이 그러한 날개를 가진 나비에게 도망이란 있을 수 없다. 화사한 봄날 무게를 잴 수도 없을만치 가벼운 나비는 순식간에 잭나이프를 나풀거리며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유유히 유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환한 백주에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비는 꽃의 가장 안주머니에 감추어둔 지갑을 훔쳐내는 대담한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봄은 더 화사하게 오는가 보다. [곽효환·시인·대산문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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