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친 사친 / 신사임당(1504~51) 산 첩첩 내 고향 천리건마는 자나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 위로 흩어졌다 모이고 고깃배들은 바다 위로 오고 가리니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꼬 시가 있는 아침 2008.05.14
공휴일 공휴일 / 김사인(1955~) 중랑교 난간에 비슬막히 식구들 세워놓고 사내 하나 사진을 찍는다 햇볕에 절어 얼굴 검고 히쭉비쭉 신바람 나 가족사진 찍는데 아이 들쳐 업은 춘스러운 여편네는 생전 처음 일이 쑥스럽고 좋아서 발그란 얼굴을 어쩔 줄 모르는데 큰애는 엄마 곁에 붙어서 학교에서 배운 대로 .. 시가 있는 아침 2008.05.14
대추 따는 노래 대추 따는 노래 / 이달(1539~1612) 이웃집 어린 아이가 찾아와 대추를 따자, 늙은이가 문 열고 나와 어린 아이를 내쫓았네. 어린 아이가 도리어 늙은이 보고 말하길, 내년 대추가 익을 때까진 사시지도 못할 텐데요. 시가 있는 아침 2008.05.14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 석천에서 차를 끓이며 / 초의 선사(1786~1866) 하늘빛은 물과 같고 물은 안개와 같아 이곳에 와서 지낸 지도 어느덧 반년일세. 따스한 밤 몇 번이나 밝은 달 아래 누웠나 맑은 강물 바라보며 갈매기와 잠이 드네.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 원래 없었으니 비방하고 칭찬하는 소리 응당 듣지 않았네. 소매 속.. 시가 있는 아침 2008.05.12
구성동(九城洞) 구성동(九城洞) / 정지용(1902~50) 골작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씨(黃昏)에 누뤼가 소란히 싸히기도 하고, 꽃도 귀양 사는곳, 절터ㅅ드랬는데 바람도 모히지 않고 산 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시가 있는 아침 2008.05.12
춘분(春分) 춘분(春分) / 노천명(1912~57) 한고방 재어놨던 석탄(石炭)이 퀭하니 나간 자리 숨었떤 봄은 드러났다 "얼래 시골은 밤나왔갔늬이" 남(南)쪽 기집아이는 제 집이 생각났고 나는 고양이처럼 노곤하다 시가 있는 아침 2008.04.24
물의 결가부좌 물의 결과부좌 / 이문재(1959~) 거기 연못 있느냐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굼쩍 않는, 천 개의 달이 빠져 나와도 끄덕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도 있느냐 ... 거기 오늘도 연못이 있어서 구름은 높은 만큼 깊이 비치고, 바람은 부는 만큼 잔물결 일으키고, 넘치는 만큼만 흘러넘치는, 고요하.. 시가 있는 아침 2008.04.24
독작(獨酌) 독작(獨酌) / 이백(701~762) 꽃 사이에 앉아 혼자 마시자니 달이 찾아와 그림자까지 셋이 됐다 달도 그림자도 술이야 못 마셔도 그들 더불어 미 봄밤 즐기리, 내가 노래하면 달도 하늘을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춘다. 이리 함께 놀다가 취하면 서로 헤어진다. 담담한 우리의 우정 ! 시가 있는 아침 2008.04.24
목성이나 토성엔 목성이나 토성엔 / 오세영(1942~) 새벽 산책길에서 살모사가 개구리 한 마리를 잡아 입에 삼키는 것을 보았다. 어제 저녁에 나도 꽁치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먹지 않았던가, 하나의 생명을 먹고 사는 다른 또 하나의 생명 죽은 자는 죽인 자의 어머니, 이 무참하게 저지른 죄를 씻기 위해 산 자는 식사 후 .. 시가 있는 아침 2008.04.24
더딘 슬픔 더딘 슬픔 / 황동규( 1938~)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무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重力)마저 놓치지 않으려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 시가 있는 아침 2008.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