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없는 시대 - 황동규(1938~ ) 이별 없는 시대 - 황동규(1938~ ) 늙마에 미국 가는 친구 이메일과 전화에 매달려 서울서처럼 살다가 자식 곁에서 죽겠다고 하지만 늦가을 비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인사동에서 만나 따끈한 오뎅 안주로 천천히 한잔할 도리는 없겠구나. 허나 같이 살다 누가 먼저 세상 뜨는 것보다 서로..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
저물녘 / 정의홍 저물녘 - 정의홍(1956~ ) 세월이 허리에 걸려 구부정하게 등 굽은 할머니 키보다 더 큰 폐지 묶음을 끌고 건널목을 건너는데 빨간 신호로 바뀐 지 오래건만 아직 반도 못 건넜다 위태위태하다 일 킬로에 백 사십 원 십 킬로에 천 사백 원 시장 안 강화식당 된장백반은 오천 원 저녁 밥 값은 ..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
자장가 / 마종기 자장가 - 마종기(1939~ ) 어릴 때 어머니가 들려주신 자장가, 그 노래 너무 슬프게만 들려서 자주 나는 어머니 등에 기댄 채 울었다지요. 잠 대신 등에 기대어 울고 있는 아들이 왜 그리 심약한지 걱정이 크셨다지요? (…) 오늘은 나를 겨우 알아보시는 어머니께 피곤한 어깨 만져드리며 작게..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
의자 / 이정록 의자 - 이정록(1964~ ) (…)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
방문객 / 정현종 방문객 - 정현종(1939~ )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
뒷굽 / 허형만 뒷굽 - 허형만(1945~)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 김승희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김승희(1952~ )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는 사람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서..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
가을 오후 / 도종환 가을 오후 - 도종환(1954~ )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 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나는 가만히 가을의 어깨를 감싸 ..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
속수 무책 / 김경후 속수무책 - 김경후(1971~ ) 내 인생 단 한 권의 책 속수무책 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냐 묻는다면 척하고 내밀어 펼쳐줄 책 썩어 허물어진 먹구름 삽화로 뒤덮여도 진흙참호 속 묵주로 목을 맨 소년병사의 기도문만 적혀있어도 단 한 권 속수무책을 나는 읽는다 찌그러진 양철시계엔 바..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
자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 지울 수 없는 얼굴 - 고정희(1948~91) 냉정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얼음 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불같은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무심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징그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아니야 부드러운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그윽한 당신이라 썼다가 지우고 따뜻한 .. 시가 있는 아침 201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