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 이정록(1964~ )

(…)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대개 오십대 후반부터 생각지도 않던 신병이 찾아온다. 화분을 잘못 들거나, 다리를 헛디디거나, 장시간 컴퓨터 작업을 하거나…. 하찮은 계기로 허리 병을 앓게 되면 앉았다 일어서기조차 힘들고 살기가 괴로워진다. 인생의 만년을 요통과 함께 살아온 노모의 다양한 ‘의자 비유법’을 인용하여 시인 아들이 삶을 재치 있게 통찰한 작품이다.
요통환자는 방바닥에 시체처럼 누워있거나 의자에 정좌하는 것이 통증을 완화하는 요령이다. 그러므로 노모에게는 도대체 삶을 기댈 수 있는 것이 의자이고, 모든 사물의 존재가 의자와 관련된다. 결혼하고 애 낳아가며 사는 것도 호박에 똬리 틀어주듯 “의자 몇 개 내놓는 거”다. 허리가 아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김광규·시인·한양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