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한라산 등정기 / 청 수

푸른물 2006. 10. 26. 19:35

 


 

한라산 등정기 / 청 수



눈 덮인 한라산에 오르면서 눈길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가는데

눈앞에 끝없이  펼쳐지는 하얀 눈은 마음을 씻어 주는 듯 시원하고

하얀 눈 위에서 까마귀가 반갑다는 듯 춤추며 맞아 주어 신기해하면서
눈길을 한없이 걸어가는 모습은 거룩한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자의 행렬 같아서 엄숙하게 보이고
오르고 올라도 더 가야한다고 빨강 리본이 손을 흔들면서 격려하는 듯 보이고
힘들고 지치려고 하면 까마귀가 반갑다고 인사하는 까악 소리에 힘을 얻게 되고
기압의 차이로 약한 위장이 백기를 들어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울렁거리며 토할 것 같아 다리는 맥이 풀려 힘이 없어질 때 조카의 사랑으로 등 떠밀려 오르니 고맙고
이제는 정말 더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때에 하늘이 열리면서 다 왔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릴 때는 해 내었다는 뿌듯함으로 가슴이 떨리었는데
저기 바라보이는 백록담은 금지령을 내린 후 침묵하고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탁 트인 백설의 무대에서 까만 까마귀들이 춤을 추며 나르니 장관이어라 !
진달래 밭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사 먹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하산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뛸 듯이 가벼운 발걸음이 내려 갈수록 무거워지면서
나중에는 모래주머니를 매단 듯  한 발 딛기도 힘들어지는데
이정표는 아직도 멀었다고 약을 올리고
주저앉고 싶은 몸을 일으켜서 엉금엉금 내려가는데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은 보이지 않고
이렇게 멀고도 지루한 길을 어떻게 올라갔을까
금덩이를 준다고 해도 다시 안 올라 갈 거야 맹세하면서
가도 가도 끝없는 눈길을 걷고 또 걸으며 내려가니
아직도 이정표는 까마득하게 남았다고 실망시키고
맥 빠진 다리를 지팡이 두개로 힘을 실어 주면서
간신히 내려가는데 마지막 남은 삼백 미터가 그렇게 먼 거린 줄 처음 알았는데
아 ! 드디어 다 내려왔구나!

왕복 40 리의 눈길을 내가 정복했구나!


2006.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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