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눈을 들어 밭을 보니

푸른물 2006. 10. 10. 10:29

눈을 들어 밭을 보니


논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무르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밭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가 젊음을 뽐내 듯

자랑스럽게 있고

또 다른 밭에는 누렇게 익은 호박이 노년을 즐기듯

흐뭇한 얼굴을 하고 있고

눈을 들어 보니 사과도 배도 감도

자연의 보석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네요.



자기의 할 일을 다 했다는 겸손함으로

자기의 본분을 잘 감당했다는 당당함으로

결실의 가을에 풍성한 자연의 잔치를 하고 있는 것은

여름에 그 뜨겁던 햇볕도 묵묵히 견뎌내고

무섭게 퍼붓던 장대비도 꿋꿋하게 이겨낸

고통 후에 얻어지는 것이라는 알기에 더욱 아름답네요.



한 해를 갈무리 하는 이 가을에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결산하는 이 계절에
고추나 호박처럼,  사과나 배처럼
풍성한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알곡은커녕 쭉정이조차 내 놓을 것이 없다면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하기엔
너무 속이 보이는 부끄러운 변명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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