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 이경림 (1947~ )
내사 천날만날 내 혼자 설설 기다가
절절 끓다가 뒤로 벌렁 자빠지다가
엉덩짝이 깨지도록 엉덩방아를 찧어보다가
꾸역꾸역 다시 일어서다가
오장육부 쥐어뜯으며 해악도 부려보다가 급기야는
절벽 같은 세상 지 대가리 찧으며 대성통곡도 해 보지만
우짜겠노 남는 건 뿌연 물보라 뿐인기라
일년하고 삼백날 출렁이지 않는 날 메날이나 되것노마는
그래도 우짜다 함뿍 거짓처럼 바람자고 쨍한 햇살에 바스스
젖은 가슴 꺼내 말리는 날 있어
이 싯푸른 희망 한 둥치 놓을 길 없나니
여름날 읽지 않을 수 없는 시다. 그러나 파도를 이렇게 육화시켜 노래하고 있는 시도 드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파도에 이입된 시인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그 보편성에 놀란다. 왜냐하면 거기에 나의 얼굴도 보이기 때문이다. 백사장에서 파도를 오래 들여다본 이들은 다 이런 소리를 들었으리라.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시는 이렇게 눈치채지 못한 사실을 우리 대신 노래한다. 여기 시의 끝없는 신선함이 있으리라. 이와 함께 이 시의 구성진 사투리의 음조, 또한 가슴에 오래 출렁이리라. <강은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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