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꼬부랑 할머니가 - 신경림 (1936 ~ )

푸른물 2010. 9. 4. 08:46

꼬부랑 할머니가 - 신경림 (1936 ~ )

꼬부랑 할머니가

두부 일곱 모 쑤어 이고

일곱 밤을 자고서

일곱 손주 만나러

한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길 잃고 밤새 헤맨

아기노루 먹으라고

두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먹이 없이 내려온

다람쥐 먹으라고

세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알 품고 봄 기다리는

엄마 꿩 먹으라고

네 고개 넘어섰다

또 한 모 놓고

동무 없어 심심한

산토끼 먹으라고

(중략)

일곱 고개 넘어서니

일곱 손주 기다리는데

두부는 안 남고

한 모밖에 안 남고



노시인의 동시다. 설명이 필요없다. 긍정의 따뜻함에 얹힌 사소함의 환유가 우리의 근원에 있는 ‘소리심’의 줄을 확대시킨다. 가끔 이런 동시의 마음에 젖어보라. 생이 훨씬 다정해지리라.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