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조금씩 이상한 일들 4 - 김경미(1959~)

푸른물 2010. 9. 4. 08:45

조금씩 이상한 일들 4 - 김경미(1959~)

사과에서 녹내나던 저녁, 한 사람의 숨이 멎었다

멎고 보니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숱한 끈과 붕대와 마개로 돌아간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시신의 무엇이 두려워 저토록

묶고 감고 메우고 막는 것일까

마지막 두 발 하염없이 묶일 때

화장실에 달려가 가슴끈을 풀었다

창 너머 칸나꽃이 크고 붉은 동물 같았다

‘입관실에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시다. 우리에겐 가끔 전혀 낯설지 않은 지상의 일이 갑자기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아마 죽음이 그런 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위의 시는 우리가 늘 부닥치면서도 파악하지 못한 채 달아나기만 하는 죽음의 한 모습을 아주 냉정하게 포착한다. 죽음의 형식을 통해 죽음 속으로 들어가려 하는 시인의 객관화된 암시성, 가끔 그런 암시의 맛 때문에 무한 확장되는 시의 힘을 느끼진 않는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가장 오래된, 낯익은, 이해되는, 그러면서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죽음이라는 것. 아침부터 미안하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니.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역에 있는 기차가 아닌가.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