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1917~1945)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1917~1945)

푸른물 2010. 9. 4. 08:47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1917~1945)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시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 쉽게 살려는 사람도 너무 많다. 우리는 모두 ‘남의 나라’에 사는 것 같다면 지나친 자기폄하일까. 쉬움은 편함을 목적으로 하고, 착각을 유도한다. 오늘 우리의 착시는 안경을 고치는 것으로만은 쉽게 수선되지 않을 것이다. 쉽게 썼지만 이 시는 결코 쉽지 않다. 우리의 뒤통수를 친다. 식민지 시대나, 오늘에나.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