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오늘, 쉰이 되었다 -이면우(1951~ )

푸른물 2010. 9. 4. 08:33
오늘, 쉰이 되었다 -이면우(1951~ )

서른 전, 꼭 되짚어 보겠다고 붉은 줄만 긋고 영영 덮어버린 책들에게 사죄한다 겉 핥고 아는 체했던 모든 책의 저자에게 사죄한다

마흔 전, 무슨 일로 다투다 속맘으로 낼, 모레쯤 화해해야지, 작정하고 부러 큰 소리로 옳다고 우기던 일 아프다 세상에 풀지 못한 응어리가 아프다

쉰 전, 늦게 둔 아이를 내가 키운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그 어린 게 날 부축하며 온 길이다 아이가 이 구절을 마음으로 읽을 때쯤이면 난 눈썹 끝 물방울 같은 게 되어 있을 게다

오늘 아침 쉰이 되었다, 라고 두 번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서늘한 방에 앉았다가 무릎 한 번 탁 치고 빙긋이 혼자 웃었다

이제부턴 사람을 만나면 좀 무리를 해서라도

따끈한 국밥 한 그릇씩 꼭 대접해야겠다고, 그리고

쓸쓸한 가운데 즐거움이 가느다란 연기처럼 솟아났다



고생을 많이 한 이들에게서 왜 좋은 시가 나올까? 아무튼 이 시인은 보일러실에서 하루 일을 끝내고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시를 건진다. 당신도 서 계셨을 정류장. <강은교·시인>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사랑 - 자크 프레베르  (0) 2010.09.04
홍어 - 김선태(1960~ )  (0) 2010.09.04
앙다문 입 - 문동만(1969~ )  (0) 2010.09.04
나무가 바람에게 - 데이비드 매캔(1944~ )  (0) 2010.09.04
늪 - 유지소(1962~ )  (0) 2010.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