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지소(1962~ )
내 음성이 “너·무·해” 하고 너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네가 사라져버렸어 왜냐하면, 동시동작으로, 내 마음이 “너·無·해”라고 단호하게 너를 삭제해 버렸거든
그때, 기우뚱거리는 몸을 나무에 기대지 말았어야 했어 나무가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쿡쿡,
나를 <나·無>로 인식했거든 나도 삭제되고 말았어
너도 없고,
나도 없고,
나무만 있었어
천 개의 혓바닥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어
나는 없습니다. 주민등록 번호로 존재할 뿐입니다. ‘삭제’의 키를 누르면 그 어떤 확고한 이름도 삭제되어 버리는 오싹한 경험을 매일 하고 있을 세대인 컴퓨터 세대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럴 때 쓰는 시는 우리를 구원하지 않을까요? 가장 인간적인 시쓰기라는 영역, 여기서만이 우리는 만화가 되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의 키가 인조대리석의 기둥 옆에서 왜소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강은교·시인>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다문 입 - 문동만(1969~ ) (0) | 2010.09.04 |
---|---|
나무가 바람에게 - 데이비드 매캔(1944~ ) (0) | 2010.09.04 |
낙수 -조정인(1953~ ) (0) | 2010.09.04 |
꽃 진 자리에 - 문태준(1970~ ) (0) | 2010.08.07 |
인천만 낙조 - 조오현 (1932 ~ ) (0) | 2010.0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