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40대 여성들이 정기적으로 유방암 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지침을 발표해 우리나라까지 파장이 일고 있다.
미국 정부 산하 예방의학특별연구팀(USPSTF)은 지난달 ▲40대 여성은 맘모그램(유방촬영술) 정기 검진을 받을 필요가 없으며 ▲50~74세의 여성은 격년으로 맘모그램을 받고 ▲의사의 유방촉진 또는 자가유방촉진은 효과가 증명된 연구결과가 없으므로 교육하거나 권장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의 '개정 유방암 검진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병원마다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강성수 제일병원 외과 교수는 "요즘 40대 여성들이 '미국에서 유방암 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데 굳이 받아야 하느냐는 질문이 하루 수십 건씩 들어온다. 정말 유방암이 의심되는 여성에게 검사를 하려 해도 의료진이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방암학회 "미국 개정 지침 수용할 수 없어"
국내 유방암 전문의들은 "우리나라는 20여년 전부터 미국의 유방암 검진 지침을 따르고 있지만 이번 검진 지침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배정원 한국유방암학회장(고대안암병원 유방내분비외과 교수)은 "유방암학회는 '40세 이상은 1~2년에 한번씩 의사의 유방촉진과 맘모그램을 받고, 매달 1번 자가유방촉진을 하라'는 기존 지침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견해가 왜 다를까? 우선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40대의 유방암 유병률이 가장 높게 나타난다. 미국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유병률이 높아져 70대에 정점(頂點)을 찍지만 우리나라는 40대에 가장 많아진 뒤 점차 줄어든다. 노동영 서울대병원 유방외과 교수는 "따라서 한국은 미국과 달리 40대 여성은 반드시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 ▲ 40대 여성이 맘모그램 검사를 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40대 여성의 유방암 정기 검진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40대 유방암 환자가 많아 1~2년마다 정기 검진을 받는 게 좋다./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 ▲ 40대 여성이 맘모그램 검사를 받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달 40대 여성의 유방암 정기 검진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지만,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40대 유방암 환자가 많아 1~2년마다 정기 검진을 받는 게 좋다./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 의사의 촉진이나 자가유방촉진이 효과가 없다는 미국 지침에 대해서도 국내 의료계는 반대한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 30~40대 여성의 80~90%는 유선 조직이 빽빽하게 발달한 치밀유방이다. 맘모그램 검진을 하면 치밀유방과 암덩어리 모두 흰색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꽤 큰 암도 정확히 찾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촉진으로는 1㎝ 이상의 종양은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미국의 개정 지침은 '40대의 이른 나이부터 맘모그램을 하면 방사선에 계속 노출돼 위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강 교수는 "1년에 한 번 맘모그램 검진 시 노출되는 방사선량은 건강에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비싼 의료비 때문에 검진 기준 완화한 듯"
이번 개정에 대해 국내 전문의들은 "의료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에서 일반 국민의 의료비용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40대 여성의 정기 검진을 권장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정기 검진으로 유방암을 발견하는 비율이 낮은 데 비해 검진비용이 사회적으로 너무 많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한국 사정과는 좀 다르다. 국내의 맘모그램 검진비는 1회당 2만원 정도로 미국보다 10분의 1~2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자가유방촉진법 교육도 국내 병원에서는 무료인 반면 미국 의료기관은 80달러(약 9만3000원) 이상 청구한다. 노 교수는 "우리나라는 수백만명 중 1명이라도 돈이 들지 않는 촉진검사로 암을 발견할 수 있다면 시행해야 한다는 시각인 데 비해 미국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는 '해석 차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력 없어도 40대 이후 1~2년마다 맘모그램 받아야
그렇다면 우리나라 여성은 어떻게 유방암 검사를 받아야 할까? 유방암 가족력이 있는 여성은 20대부터 매달 한번씩 자가촉진검사를 하고, 30대부터는 매년 맘모그램을 받아야 한다. 가족력이 없다면 30대부터 매달 1회 자가촉진검사를 한다. 40대에 들어서면 1~2년에 한번씩 맘모그램 검진을 하고 암이 의심되면 유방초음파검사를 받는다. 젊고 마른 여성이나 임신부는 자가촉진검사에서 멍울이 만져지면 바로 유방초음파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50대 이후의 여성은 가족력 여부에 따라 전문의와 상의해 1~2년에 1번씩 맘모그램 검사를 받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