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낡은 가방

푸른물 2006. 4. 27. 14:25

조카가 대학교 다닐 때 들던 가방이 싫증이 났는지  안들고 다녀서 그 가방이 어찌 어찌하여 나에게 오게 되었는데 교회 갈 때 그 가방을 들고 갔더니 너무 멋지다고 하면서 싫증나면 자기에게 양도하라는 말을 들으니 싫지 않은 기분이 들었었다.  

겉은 검정 가죽이고 안은 흰 면이었던 가방이  몇 년을 갖고 다니다 보니 본래 칠칠치 못한 주인을 만나서인지 때가 타서인지 겉은 희뿌연 회색에 가깝게 변했고 안은 볼펜의 잉크가 번져서 퍼렇게 여기저기 물든데다 얼룩덜룩 하여 내가 보기에도 들고 다니기에는 좀 뭐한것 같아서 한켠에 쳐 박아 두었었는데 봄에 겨울옷을 정리하면서 눈에 띄여서 보니 버리기에는 아깝고 들자니 그렇고 해서 거실에 있는 작은 빈 의자위에 올려 놓았는데 볼 때 마다 속은 깨끗이 빨고 겉은 가죽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처리해야지 하면서도 아직까지 못 하고 있다.

무엇이든 잘 버리지 못하는 나는  요즘에야 그것이 집착이 강해서인 것 같아서 고치려고 하는데 천성인지 잘 되지 않는다.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비워야 하는데 하찮은 가방하 나에도 미련을 가지고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이게 아닌데 싶다.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아파트에선 쓸만한 것도 과감하게 버려서 문제인데 나는 너무 집착해서 문제이니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 말하길 일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버리라고 하는데 우리집 옷걸이에는 몇십년된 옷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봄에는 과감하게 버리려고 마음을 먹고 정리를 하는데 이 옷은 편해서  저 옷은 언젠가는 입을 것 같아서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다시 옷걸이에 걸어서 옷걸이에는 여전히 오래되어 낡은 옷으로 꽉 차고 말았다. 하찮은 옷도, 물건도 버리지 못하면서 이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떠날까

미리 이별연습을 해 두어야 할텐데 낡은 가방을 보면서 가방도 낡으면 쓸모가 없어지는데 사람도 마찬가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니 낡은 가방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언짢아진다.

조만간 가방을 어떻게 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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