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의 교사 생활을 회고해보면서 / 청 수

푸른물 2015. 9. 19. 06:50

나의 교사 생활을 회고해보면서

 

내가 거암교회 중고등부 교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지금부처 17년 전인 1972년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훌륭한 건물의 교회가 아니고 장소도 지금 위치가 아닌 거여동 산 54번지의 전형적인 시골 교회였으며 중고등부 교실은 흙벽돌로 지은 작은 건물이었다.

교회를 가려면 논두렁 밭두렁의 진흙탕 길을 걸어가야 했으며 전체 교인이 백 명도 안 되는 목가적인 아주 작은 교회였다.

그때 내가 가르쳤던 중학교 학생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시집가고 장가갔으며 자녀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중년이 되어가고 있다. 그때 가르쳤던 제자들 중의 몇이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으며 그것도 집사로, 교사로 맡은바 사명을 충성으로 봉사하고 있으니 흐뭇한 마음이다.

그 후에 나는 거여동을 떠나 암사동으로 이사하게 되고 개인 사정으로 교사 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십 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1986년도에 다시 중고등부 교사를 맡게 되었다.

72년도에는 멋모르고 시작한 교사생활이었다면 86년도에 시작한 교사생활은 하면 할수록 어려웠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는 내가 그 어린 심령들을 주님 앞으로 온전히 인도하고 있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고 육적으로는 교회와 멀리 사는 관계로(암사동) 일찍 집을 나오는데 따르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너희가 어린 심령 하나를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으리라.’ 는 주님의 말씀이 항상 나를 압박(?)했으며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나를 괴롭히곤 했다.

또한 주부로서 주일날 일찍 집을 나오니 모처럼 쉬는 가족들에게 따뜻한 가정 분위기를 마련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나를 괴롭혔던 것도 사실이었다.

암사동에서 시작된 제2의 교사생활은 좀 더 멀리 성남으로 이어졌고 더욱 더 먼 경기도 광주로 이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나의 교사생활은 더욱 고달 퍼 만 갔다.

교회에서 나는 일찍 도망가는 교사로, 집사로 낙인 찍혔고 집에서는 교회에서만 사는 엄마로 아내로,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본의 아니게 서게 되었다.

나는 주일마다 단골 지각생으로 자리를 굳혀 갔으며 그럴 때마다 나는 교사로서 학생들 앞에 나서기가 부끄러웠고 하나님께는 참회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성경말씀은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드시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다는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을 나는 수십 번도 아니 수백 번도 더 되뇌어보곤 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다,’ 교사라면 적어도 그만큼의 사랑을 제자들에게 베풀라고 예수님은 몸소 본을 보여주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나는 과연 그 비슷하게라도 하고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고는 했다.

내가 원했던 이상적인 교사상은 이런 것이었다.

첫째 제자들의 발을 씻어줄 정도로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사

둘째 학생들에게 본이 되는 교사

셋째 학생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교사

넷째 학생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교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교사였으나 나는 그 어느 항목에도 해당 사항이 없다는데 나의 교사로서의 문제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은 것을 보면 나의 교사로서의 자격은 합격 미달이었음이 분명하다.

고백하건대 일주일 내내 공과 책 한 번 안 들여다보다가 주일 아침 교회로 가는 버스에서 허둥지둥 보던 적도 몇 번이었던가!

한편으로 생각하면 즐거웠던 일도 많이 있었다. 스케이트 강습회 때 꽁꽁 언 손을 녹여가며 국수를 준비해서 학생들을 먹이던 일이며, 등산대회 때 장소를 잘 몰라서 남한산성 어디라는 말만 대강 듣고 학생들과 동행하지 않고 혼자 갔다가 눈길을 이리저리 미끄러지며 헤매던. 다행히 거기서 교회 집사님을 만나 반가웠으나 그분도 장소를 몰라 허둥대는 중이었으니 둘이서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다 찾지 못하고 되돌아 선 일이며, 몽산포에서 짠 바닷물에서 수영하던 기억들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추억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정주부라는 핸디캡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멀리 산다는 것을 특권인양 내세우며 각종 행사에 수수방관, 미온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에 이 자리를 빌려서 새삼 학생 여러분에게 , 선생님들에게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

우리 학생들을 코 흘리던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나로선 학생들에게 애착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런 당부의 말을 하고 싶다. 신앙적으로는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바울사도의 말씀을 생활에 실천하라고 권하고 싶다.

일상적으로는 첫째로 어디서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될 것. 둘째로 최선을 다하는 생활을 할 것. 셋째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을 마지막 당부의 말로 권고 하면서 이글을 끝내려고 한다.

주님의 한없는 사랑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기를 기도드리면서

19891216일 중고등부 교사 김 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