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꽃다발

목사님의 생신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 청 수

푸른물 2014. 2. 26. 04:36

 

목사님의 생신을 미리 축하드립니다! 어제 목사님 생신이 며칠 안 남았구나 생각했었는데 어젯밤에 목사님과 사모님을 꿈에서 뵈었습니다. 꿈에서 사모님이 왜 연락을 안 하냐고 물으셔서 제가 변명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강의 중에 전화하게 될까봐서  못 했다고 말씀드린 게 꿈 같지가 않고 너무 생생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폭염에 잘 계시지요? 꿈에서는 목사님이 수척하셨는데 꿈은 반대라니까 건강하시리라 믿습니다. 사모님을 만나면 맑은 공기를 마신 듯 영혼이 맑아지는 것 같아서 좋은데 그럴 기회가 없어서 많이 아쉽습니다. 우리 옥토교회 여름 수련회는 남원에 계신 정정근 목사님도 만날 겸 지리산도 가볼겸 겸사겸사  남원으로 1박2일(15~16)가기로 했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 언제 한 번 옥토교회에 오셔요. 우리 서로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저의 시를 마음의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2010.7.20 김영애 권사 드림.

 

폭염아! / 청 수


선풍기는 목이 아프게 돌아가는데도

방의 온도는 32도를 가리키고 있네.

가만히 있는데도 머리는 난로처럼 뜨겁고

얼굴은 덴 것처럼 화끈 거리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30도를 웃돌며

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리는데도

언제 기세가 꺾일 지 그저 눈치만 보네

폭염아! 이제 못이기는 체 고개 숙이면 안 되겠니?

 

장맛비 / 청수

 

비가 오네. 장맛비가 주룩주룩 오네.

어제도 오고 오늘도 오고 내일도 온다네.

해님은 비를 피해 숨었는지 보이지 않고

사방이 회색으로  둘러 싸였네.


집안이 온통 장마에 눅눅한 것처럼

해님은 나에게서 모습을 감추고

장맛비가 지칠 줄 모르고 내려서

몸도 마음도 후줄근하게 젖었네.


당신을 처음 만났는데 / 청 수

 


당신을 처음 만났는데

조금도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당신의 맑은 미소에

닫혔던 마음이 열렸기 때문이었지요.


당신과  처음 만났는데

조금도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당신의 순수한 마음이

잠자던 나의 순수함을 깨웠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맑은 영혼은

목마른 이에게 시원한 옹달샘처럼

당신의 이웃들에게

아련한 그리움과 동경의 대상으로 기억 되겠지요.


가 면 / 청 수


외출할 때 옷을 갈아입듯이

그는 얼굴에 가면을 쓴다.

위선이라는 가면을 쓰면

편리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불편하지만 가면을 쓴다.


가면 아래서는 거짓과 미움

시기와 질투 탐욕과 분노와 절망 등

온갖 추악한 모습들이 판을 치는데

가면을 쓴 그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시치미를 뗄 수 있어서 가면을 쓴다.


집에 돌아와서  가면을 벗고 거울을 본다.

뿔이 여러 개 달린 괴물 같은 얼굴이 보인다.

그는 당황스러워서 얼른 세수를 한다.

다시 거울을 보니 낯익은 얼굴이 있다.

그런 후에 가면을 눈에 잘 띠는 곳에 걸어둔다.

 

 

 

나는 추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청 수


 

나는 젊어서는 마흔이 되면 어떻게 살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마흔 살은 까마득하게 생각 되었고 마흔 살은 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늙으면 추해진다는 사실이 싫어서 나는 마흔 살이 되면 어떻게 살지? 하는 철없던 시절이 있었기에 마흔 살이 될 무렵부터 나는 추해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내 나름대로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안하던 액세서리를 즐겨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의 멋내기의 첫걸음이 시작 되었다.

이를테면 용감하게(?) 귀를 뚫어서 안하던 귀걸이도 하고 팔찌도 하는 식으로 나는 겁 없이

용감해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액세서리는 귀걸이, 팔찌, 반지. 목걸이 순으로 외출 할 때는 귀걸이는 나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이 들수록 깔끔하게, 우아하게, 품위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공식적인 모임, 행사에는 늘 정장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래서 나는 옷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내 지갑의 형편에 맞게 창고 대방출이라는 광고지가 보이면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다니게 되었다. 거기서 한 두 개만 건져도 나는 보물을 찾은 듯이 좋아하면서 집에 오고는 하였다.

그렇게 모인 옷이 하나 둘씩 생기면서 내가 옷을 살 때는 제일 먼저 디자인을 보고 색상을 보고 사이즈를 보고 재질을 본다. 중년이 되면서 원색보다는 무채색 계열을 찾게 된다.

옷을 고를 때는 마음에 드는 상의면  내가 갖고 있는 바지나 스커트에 맞는 것을 고르고

하의면 그 반대로 생각하면서 고르고는 한다.

그래서 내 옷은 상. 하가 제 짝인 것이 거의 없고 대강 비슷하게, 아니면 반대로 맞추어서 입는다. 그 부족한 점을 스카프나 모자나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어서 내 옷의 부족함을 그런 식으로 보충하고는 한다.

나는 옷을 복잡한 디자인 보다는 단순하면서 깔끔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그것은 젊어서부터 변하지 않는 내 취향이기도 하다.

내가 계절을 앞서 옷을 사는 것은 이월상품의 싼 가격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나의 성격과도 잘 맞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편한 옷이 좋다. 그래서 나이만큼 옷을 입는 다는 말이 있나 보다

그래서 내 사이즈를 입으면 불편하다. 한 사이즈를 더 크게 입는다. 그리고 불편한 옷은 멀리하게 되고 편한 옷을 가까이 하게 된다.

그런데 철이 바뀌면 입고 나갈 옷이 없다. 잘 버리지도 정리하지도 못하는 성격이라 몇십 년 된 옷도 그대로 갖고 있어서 내 작은 옷장은 옷으로 넘쳐 나고 내 방에 있는 긴 옷걸이에도 넘쳐 나고 건너 방에 있는 붙박이 삼단 옷걸이에도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안 입는 옷은 버려야지 하고 큰 맘 먹고 옷장이나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을 보면 저 밍크코트는 몇 년째 안 입는데 남편이 잘 나갈 때 결혼해서 처음으로 사 준 옷이라서 버리지 못하고 있고 저 옷은 내가 처음으로 양장점에서 맞춘 옷이라서 버리지 못하고 이 옷은 언젠가는 한 번쯤 입을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하는 식으로 큰 맘 먹고 시작한 옷 버리기는 들었다 놨다 하다가 다시 제 자리에 놓는 것으로 끝이 나고는 한다.

그 많은 옷에도 계절이 바뀌면 입을 옷이 없다. 젊어서는 같은 옷을 계속 입었더니 어린 아들이 엄마는 지루하지도 않느냐고 어른스럽게 말했을 정도였는데 그 때는 젊음이라는 빛나는 후광이 있어서 옷이 그리 문제가 안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년이 되면서 같은 옷을 연달아 입고 싶지가 않다. 특히 교회 갈 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최고의 것으로 계절에 맞게 입고 간다. 가능한 한 같은 옷을 두 번 입고 교회 가지는 않는다 . 하다못해 상의가 그대로면 하의를 바꾸는 식으로라도 나는 변화를 준다. 하나님 앞에 나가면서 사람도 후줄근한데 옷조차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하나님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우아하다는 말과 멋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듣고 지인에게서도 듣는다. 그럴 때면 정말 내가 멋쟁이인가?  믿기지 않아 나 자신에게 반문 할 때가 있다. 그런 말을 듣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추해지기 싫어서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옷에는 어떤 스커트가 또는 바지가 어울릴까를 생각하고, 어떤 스카프를 할까? 골라서 해보고  어떤 액세서리를 할까 생각도 하고 실제로 해보기도 하면서 제일 그럴듯한 것으로 하는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 나의 노력이라면 노력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추해지지 않으려고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하다 보니 멋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해당 되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겉 모습을 가꾸려고  노력한 만큼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나 를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내면이 아름답다면 굳이 겉 모습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내면의 세계는 텅 비어서 초라하다는 말을  내 식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스카프를 좋아한다 / 청 수


나는 스카프를 많이 가지고 있다.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고 긴 것도 있다. 빨강 색도  주홍색도 있고 파랑색도 연두 색도 있다. 아니 무지개색이 다 있다. 그 중에는 내가 산 것이 대부분이지만 선물 받은 것도 꽤 있다. 새 것도 있고 몇십 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고색창연한(?) 것도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스카프는  천 원에서 이삼천 원 정도의 값싼 것이 대부분이다. 언젠가 백화점에서 눈에 띄는 스카프의  값을 보고는 속으로 기절할 정도였다. 내 기억으로는 이십몇 만원 이었던 것 같다

젊어서는 스카프를 잘 하지 않았다. 모자쓰기처럼 중년부터 시작한 새 버릇이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새 옷을 사는 것보다 철 지난 이월상품의 옷을 사다보니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코디연출을 위해서다. 나는 여름에는 겨울 옷을 ,겨울에는 여름 옷을 사는 것으로  내 옷은 천 원에서 시작하여 만 원이 넘는 옷이 거의 없다.  그래도 나는 멋쟁이라는 소리를 곧 잘 듣는다. 그것은 순전히 스카프의 덕일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 나다.

어느 행사에 이천 원을 주고 산 정장을 입고 참석했을 때 지인이 너무 멋있다고 연신 감탄을 해서 듣기에 민망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역시 오래 되었지만 그 옷에 맞는 스카프를 했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스카프를 가지고 코디를 한다.  그러면 유행이 지나서 외면 당해 한껏 주눅이 들어  나에게  왔던 옷은 과거를 잊은 채 당당한 모습으로 탈바꿈 하는 것이 나는 기쁘다.

 옷에게 생명을 불어 준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스카프로 인해 민망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 아들네 식구가 왔는데 다섯 살 난 손자가 자기 엄마가 자는 사이 내 스카프를 있는 대로 다 꺼내서 장난을 하고 있는데 내가 집에 오니 거실이고 방이고 스카프가 정신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때 며느리가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민망했었다. 그게 일이천 원짜리라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우습고 오래 된 것 들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어쨌든  내 속살을 보인 것처럼  당황스러웠고 은밀한 비밀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스카프가 많다는 것 가지고도 며느리와 아들의 눈치가 보이니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 어른이라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스카프가 알려준 것 같아서  씁쓸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스카프를 좋아한다.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또 살 것이다 긴 스카프를 하고 오픈 카를 타고 가던 어느 외국 여배우가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서 사망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생각나더라도 나는 오픈카를 탈 일이 없으니 마음 놓고 스카프를 좋아할 것이다. 나의 주눅 든 옷에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해서도 나는 계속 스카프를 애용할 것이다. 

 

내가 모자를 쓰는 이유 / 청 수

 

내가 모자를 쓰는 것은 중년이 지나면서였다. 그 전에 썼던 것은 여고시절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교복과 같이 썼던 모자가 처음이었다. 그 때는 여학교에서도  우리학교가 모자를 처음 쓰기 시작한 첫번째는 아니라도 두번 째쯤 되었던, 거의 모자를 안 썼던 시기였다. 아니 우리도 쓰면서 생소했고 신기하기도 했으며  조금은 창피한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유치원에도 들어가기 전에 작은고모가 털실로 짜준 모자를 썼다니까 나의 모자쓰기는 꽤 역사가 오래되었다.

요즈음에는 모자를 자주 애용한다.  머리가 부스스할 때라든가 파머머리가 풀려서 오늘 낼 하면서 파머를 미루고 있는 중이라든가 머리를 막 감고 어디 가야 할 때 나는 모자를 쓴다. 그러면 머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옷과 매치시키면 멋쟁이나 된 듯 기분이 업 되어서 나는 모자를 즐겨 쓴다.

요즘  다른 이유가 더 생겼다. 새치머리가 아닌 머리가 본격적으로 하얘지기 시작해서  머리염색을 차일피일 늦추고 있을 때면 어느 옷을 입어도 5% 부족한 느낌이 들 때 나는 모자를 쓴다 그러면 내가 멋쟁이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길 가다가 눈에 띄는 모자가 있으면 산다. 그렇다고 비싼 모자는 나의 지갑이 반대를 해서 나는 몇 천원하는 길표를 사니 내가 가지고 있는 모자를 다 합해도 가격부담이 없기에 가능한 얘기다

요즘 어느유명한 P라는 여가수가 하얀 백발로 텔레비전에 나왔는데 처음에는 멋으로 변신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서는 나는 그 때 배신감을 느꼈었다. 엊그제 까지도 까맣던 그녀의 머리가 어느날 갑자기 백발로 변한 당혹감이었기도 했고 흑발이었을 때 그녀는 나이보다 10 여년은 젊어보였는데 백발로 변신하고 나니 그녀 나이 근처로 보이는 것도 나의 당혹감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고백(?)에 의하면 50대부터 백발이 되어서 그동안 염색으로 철저히 위장을 했었다고 한다. 백발의 그녀를 사람들은 섹시하다는 말도 하고 다른 멋도 있다는 말도 하는가 본데 나는 그녀가 중년여인에서 갑자기 할머니로 변신한 것 같아 그냥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면, 늙으면 세월 따라 머리도 하얘지고 얼굴에 주름살도 생기기 마련인데 그런 자연의 현상을 보톡스라는 주사로 ,수술로 얼굴을 동안으로 만드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도 하여 거부반응을 보이면서도 머리에 칼은 아니라도 머리보톡스(?)인 염색을 하는 것에는 거부반응이 없는 것은 나의 모순이기도 해서 씁쓸하기만 하다

나도 언젠가 그녀처럼  머리가 하얘지면 당당히 백발로 나설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 때 가봐야 알 것 같다는 말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어쨌든 그 여가수가  백발로 자연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선  그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