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치동으로 몰리는 아이들] [上] 전학 온 학생이 20%곽수근 기자 topgun@ch

푸른물 2010. 9. 30. 07:21

대치동으로 몰리는 아이들] [上] 전학 온 학생이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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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7 03:03 / 수정 : 2010.09.17 09:21

1학년 4학급, 6학년 13학급… "기형 초등학교"
高학년생 전학 많기 때문, 지방서도 전학와 두집 살림
"좋다는 중학교 배정 쉽고 다양한 학원 시스템 장점" 강북은 전학가는 학생 많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초등학교 학생 수는 이번 2학기 시작과 동시에 84명이 늘었다. 여름방학 동안 다른 곳에서 전학(轉學) 온 학생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전입생의 70% 이상은 외국에서 돌아온 조기유학생이고 서울 다른 지역과 지방에서 온 학생은 22명"이라고 말했다. 길 하나 건너 마주 보고 있는 B초등학교도 2학기 들어 76명이 늘었고, 인근 C학교도 86명이 늘었다.

좋은 학군(學群)과 대한민국 최고의 '사교육 인프라'를 찾아 몰려드는 초등학생들의 '대치동 러시(rush)'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곡·대치·대현·도곡 등 대치동 내 4개 초등학교의 전입학생 수는 전교생의 20%에 달한다. 5명에 1명은 전학 왔다는 얘기다. 서울 평균(7.4%)의 세 배에 가깝다.

그 결과 대치동의 초등학교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학생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역(逆)피라미드' 분포를 갖게 됐다. 올해 교육정보 공시에 따르면, 대치초교는 1학년이 4학급(126명)이지만 6학년은 13학급(413명)이나 된다. 1학년이 5학급(138명)인 대곡초교도 6학년은 11학급(362명)이고, 1학년이 7학급(243명)인 대도초교도 6학년은 11학급(435명)으로 부풀었다. '대치동 러시'가 이런 기형적인 구조를 낳은 것이다.

대치동 기러기

강원도 태백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박진희(가명·40)씨는 한 주는 서울 대치동의 집, 그다음 한 주는 태백의 약국, 이렇게 양쪽을 오가며 보낸다. 대치동엔 중학생 아들(15)과 초등학생 딸(10), 유치원에 다니는 딸(6)이 산다. 약국 일을 함께 하던 남편도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대치동으로 이사했다.

박씨네가 '반(半)기러기 가족'이 된 것은 2년 전, 당시 초등 6학년이던 아들의 전학을 위해서였다. 태백의 초교에서 4학년을 마친 아들은 캐나다에서 1년 연수한 뒤 대치동의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박씨는 "한 주 걸러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애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의 초등학교에서 이런 사례는 드물지 않다. 작년 대현초교의 전입학생 비율은 28.4%이다. 강남구 평균 전입학생 비율(12.7%)의 2배가 넘는다. 대치(19.6%)·대곡(16.9%)·도곡(16.1%) 등 대치동의 다른 초등학교들도 전입학생 비율이 높다. 대치동과 맞닿은 도곡동에 자리 잡은 대도초교 전입학생 비율도 15.9%로 서울 평균(7.4%)의 2배 이상이다.

반면 강북의 일부 학교들은 전학 가는 학생들이 많아 대비된다. 동대문구 전농초교 전출 학생 비율은 18.9%로, 서울 평균(7.6%)의 2배 이상이다. 이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옮긴 학생은 작년 163명이었다. 전입학생(39명)의 4배가 넘는 학생들이 전학 간 것이다. 같은 구에 있는 답십리초교도 작년 전출학생(180명)이 전입학생(50명)보다 3배 이상 많았다.

생활여건은 힘들지만…

대치동으로 전학 오는 학생 중 대다수는 5~6학년 고학년생이다. 단대부중·대청중·대명중·역삼중·휘문중 등 대치동에서 배정 가능한 중학교 진학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들 학교 졸업생의 특목고 진학률이 높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대치동으로 몰리는 현상이 심화됐다.

자녀들을 위해 대치동에 전세를 얻은 부모들은 스스로 '대전(大傳·대치동 전세)살이'를 한다고 말한다. 대치동으로 이사 오는 순간 '시집살이' 못지않은 고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에서다. 대치동의 아파트 전세값은 30평대가 4억원에 달하고, 40평대는 8억원까지 되는 곳도 있다. 그만큼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얘기다.

생활물가도 비싸다. 큰딸이 초교 4학년, 아들이 1학년 때 서울 광장동에서 대치동으로 이사온 이혜선(43)씨는 "과일도 채소도 비싸고, 예전에 살던 곳보다 생활비가 1.5배 이상 더 든다"고 말했다.

대치동 주민 김모(37)씨는 "눈에 보이는 건 온통 학원과 카페뿐이고 생활편의시설은 드물어 살기 편한 동네는 아니라는 느낌"이라며 "고시공부하는 셈 치고 애들 대학 갈 때까지만 버틴 뒤엔 바로 이곳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많다"고 말했다.

대치동으로 전학 온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지방에서 전학 온 아이들 중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사례도 꽤 있다고 학부모들은 전했다. 고학년 때 전학 오면 또래 집단과 어울리기 쉽지 않다는 얘기가 퍼지면서 3~4학년 전학 사례도 느는 추세다.

반면 경기도 평택에 살다가 5년 전 초등학교 4학년 아들과 대치동으로 이사왔다는 장진희(47)씨는 "처음엔 애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망설였지만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 대치동 커뮤니티(공동체)에 뿌리내리는 걸 보고 뿌듯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