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베풀어주신 사랑 후배들에게 나눠주길…"
성대한 은퇴식·경기 표 사려고 텐트 치기도
조명탑의 불빛이 모두 꺼진 19일 밤 대구야구장. 캄캄한 마운드 위로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비쳤다. 그곳엔 '양신(梁神)'이라 불렸던 프로야구 삼성의 양준혁(41)이 있었다. "야구는 제 모든 것이었습니다. 힘들었던 순간도 행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떠날 때입니다. 지금까지 저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후배들에게 나누어주시길 바랍니다." 고별사를 말하는 그의 양볼 위로 눈물이 흘렀다. 이날 SK전은 그가 18년 프로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었다.구장을 가득 메운 1만여 팬들은 '신'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위풍당당 양준혁"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대구상고와 영남대를 졸업하고 93년 삼성에 입단한 '대구 프랜차이즈 스타' 양준혁을 향한 작별인사였다. 99년 해태, 2000년 LG로 '원치 않은 이적'을 했다가 2002년 다시 돌아온 그는 "야구를 시작한 대구에서 많은 팬과 함께 끝을 맺어 행복하다"고 울먹였다.
- ▲ 팬들은 목놓아“위풍당당 양준혁”을 외쳤고, 떠나는‘전설’의 얼굴은 눈물과 빗물로 범벅이 됐다. 양준혁이 손을 들어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위 작은 사진은 고별사를 하며 울먹이고 있는 양준혁. /연합뉴스·뉴시스
경기 전 양준혁은 울지 않았다. "아직 실감이 안 난다. 내일이라도 와서 연습해야 할 것 같다"고 어색해했다. 전광판에 소개된 장동건·한효주 등 인기 배우들의 영상 메시지를 보면서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시구자로 마운드에 오른 아버지 양철식(75)씨를 뜨겁게 껴안으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SK 선발투수 김광현은 자신이 2007년 4월 데뷔전에서 홈런을 내줬던 양준혁을 향해 모자를 벗고 떠나는 선배를 향해 공손히 예를 갖췄다. 하지만 "양준혁 선배를 상대로 삼진 3개를 잡아내겠다. 그게 선배에 대한 예우다"라고 말했던 김광현은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양준혁은 첫 타석에서 공 3개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고, 4회와 7회에도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다. 9회 말 마지막 타석에선 송은범을 상대로 2루수 땅볼을 치곤 1루까지 전력 질주했다. 항상 최선을 다했던 그의 모습 그대로였다.
팬들은 양준혁의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했다. 1루수로 나와 평범한 송구를 잡아도, 외야수로서 평범한 플라이볼을 처리해도 환호성을 질렀다.
■SK 매직넘버 1
양준혁은 이날 출전 자체가 기록이었다. 그는 2135경기 출전, 7332타수, 2318안타, 351홈런 등 9가지 부문에서 국내 프로야구 통산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이런 축복 속에서 은퇴하는 양준혁은 복 받은 선수"라는 선동열 감독과 이만수 SK 코치의 부러움을 충분히 받을 만한 성적이었다.
양준혁의 마지막을 지켜보려는 팬들의 '티켓 전쟁'도 치열했다. 지난 13일 시작된 인터넷 예매에선 7000장이 25분 만에 동났고, 현장 판매분 3000장도 55분 만에 모두 팔렸다. 팬 100여명은 경기 전날부터 구장 주위에 텐트를 치고 지내며 티켓 구하기에 열중했다. 구단 관계자는 "양준혁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평소보다 두 배는 많아 보인다"고 했다. 한 암표상은 "6000원짜리 일반석이 6만~7만원까지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정규리그 1위를 다투는 양팀의 포스트 시즌 전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결과는 SK의 3대0 승리였다. SK는 정규리그 1위 확정 '매직 넘버'를 '1'로 줄였다. 김광현은 8이닝까지 삼진 8개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17승으로 다승 단독 선두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