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람과 이야기] [천안함 유족들의 애달픈 추석맞이] "아들 없이… 남편 없

푸른물 2010. 9. 30. 07:23

사람과 이야기] [천안함 유족들의 애달픈 추석맞이] "아들 없이… 남편 없이… 어떻게 명절 보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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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8 03:00 / 수정 : 2010.09.19 16:38

故 정범구 병장 어머니… 아들 젖니 끌어 안으며 "범구 흔적은 이것밖에…"
故 강준 상사 부인… 남편 이름 딴 강아지 안고 "함께 시댁 가고 싶었는데"

지난 15일 오후 천안함 폭침(爆沈) 희생 장병 46명 중 한 사람인 고(故) 정범구 병장의 어머니 심복섭(48)씨가 경기도 집에서 작은 태극기 함(函)을 열었다. 정 병장의 관을 덮었던 태극기였다. 심씨는 함에서 정 병장의 젖니 4개가 담긴 비닐 팩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범구가 이갈이할 때 버리지 않고 모아둔 것인데 이제 범구 흔적은 이것밖에 없네요"라며 비닐 팩을 끌어안았다.

심씨는 정 병장이 두 살 때 남편과 이혼하고 공장 경리로 일하며 홀로 아들을 키웠다. 12평 임대아파트였지만 모자(母子)는 행복했다. 아들은 신경성 우울증을 앓는 엄마에게 "빨리 취직해서 호강시켜 드릴게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입술을 깨물고 참았지만 흘러내리는 눈물까지 막을 순 없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 고 정범구 병장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어머니 심복섭씨는 고이 간직해 온 아들의 어릴 적 젖니를 품에 안고 하염없이 흐느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그러나 그때도 명절은 우울했다. 수원에 있는 정 병장 외가(外家)에 다녀오는 게 전부였다. 심씨는 "범구가 일곱 살 때 외사촌 동생들이 '형은 왜 아빠 없어?'라고 물어보자, 범구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방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그 생각 하면 미안하고 또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며 서럽게 울었다.

지난 2월 10일 설 연휴 때 6박7일 휴가를 나온 정 병장은 "친구들이 모두 고향에 가고 없다"며 우울해했다고 한다. 아들을 위해 심씨는 쇠고기, 돼지고기, 오리고기 요리를 해줬다. 평소 좋아하는 고기를 먹으며 아들이 허한 마음을 달래길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추석엔 아들이 없다. 22년 만에 홀로 맞는 추석이다. 심씨는 추석날 아침 아들의 위패를 모신 절에 갈 예정이다. 그는 "내가 살아있는 한 매년 3월 26일에 범구를 위해 천도재를 지낼 생각"이라며 "온전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지만, 죽어서라도 좋은 곳에 가길 빌 것"이라고 말했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이지만, 천안함 사건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아들, 남편, 아빠를 그리워하며 쓸쓸한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16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해군아파트에서 만난 고 강준 상사의 부인 박현주(29)씨는 "결혼 후 첫 명절인 이번 추석에 예쁘게 한복 입고 시댁에서 음식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올해 5월 9일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해군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지난해 3월 미리 혼인신고를 했다. 박씨는 "올 1월 아파트를 분양받고 천안함 장병들을 초대해 집들이했었다"고 말했다.

해군 최초 여군 부사관인 박씨는 2004년 1월 경남 진해 해군교육사령부에 보급부사관으로 부임해 선배인 강 상사를 만났다. 박씨가 전역을 앞둔 2006년 10월 강 상사는 서울로 떠나는 박씨에게 "멀어도 좋으니 나와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박씨는 그 모습에 반해 허락했고, 두 사람은 3년간 서울과 진해를 오가며 연애를 했다.

그러나 결혼식을 한 달 보름 앞두고 천안함이 두 동강 났다. 박씨는 사고 다음 날부터 3박4일간 사고 해역에서 구조 현장을 지켜봤다. 박씨는 "보고 싶었다. 우리 남편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고 싶었다"며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번 추석에 박씨는 전남 고흥에 있는 시댁에 간다. 박씨는 "시댁 식구들이 보고 싶다고 빨리 오라고 성화"라며 "9월 마지막 주에는 남편을 보러 현충원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씨 품에는 남편의 이름을 따 '준돌'이란 이름을 붙인 강아지가 안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