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깊은 속 -배용제(1963~ )
들여다 본다, 깊은 그녀의 속
그곳은 이미 입구부터 어두웠고
내 눈의 검은 창엔 검은 빛으로 가득해진다
검은 문고리를 더듬더듬 만지며 핥으며
그녀 속으로 들어간다
검은 담이 있고 창이 있고 식탁이 있고 텃밭이 있고
언덕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있고,
온통 검은 것들이어서 처음엔
여기가 우주라는 걸 영 몰랐다
핥고 비벼대면서, 그 익숙한 맛과 향기에 나는
한 생애를 기억해낸다
(중략)
컴컴한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녀의 깊은 속.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녀가 과연 누구인지. 아무리 아는 것 같아도, ‘검은 문고리’를 만지듯 그녀 속으로 들어가도, 그녀는 쉬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늘 달아나기만 한다. 그녀는 ‘검은 빛’을 품고 있다. 오늘 그녀는 자꾸 막막하다. 그녀는 자꾸 사소하다. 그녀는 자꾸 헛것이다. 그녀는 자꾸 기호이다. 그러나 그녀는 향기로운 기호, 거기 우주가 꽃피는. 당신들도 그 꽃피는 우주를 ‘더듬더듬 만지’며 아침길을 떠나지 않겠는가, 시인과 함께. <강은교·시인>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늬들 -이병률 (1967~ ) (0) | 2010.09.04 |
---|---|
시인이 된다는 것’ -밀란 쿤데라(1929~ ) (0) | 2010.09.04 |
짧고도 길어야 할 -이선영(1964~ ) (0) | 2010.09.04 |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한다 해도 - 박철 (1960∼ ) (0) | 2010.09.04 |
혀 - 김기택 (1957 ~ ) (0) | 2010.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