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무늬들 -이병률 (1967~ ) 

푸른물 2010. 9. 4. 09:09

무늬들 -이병률 (1967~ )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 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아닌 눈사태가 나고

(중략)

밀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룩처럼 덮였다 놓였다 풀어지는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



젊은 시인의 사랑의 문법을 본다. ‘유리창이 밀리고…물자국이 밀리고’라는 표현이라든가 ‘길 아닌 어디쯤에선가 때아닌 눈사태가 나고’ 등의 표현이 사랑의 마음을 더욱 쓰라리게 한다. 그러나 사랑이야말로 지구를 받쳐온 기둥임을. 생명이라는 바늘귀에 낀 한 자락 실올, 무늬임을 확인케 하는 시의 언어들. 시인이야말로 ‘늘 사랑에 밀리며, 또한 덮이는’ 사람이 아닌가. 오늘도 사랑의 ‘길 아닌’ 길을 나서는 당신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