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60代 되니 비로소 예술과 연애하는 기분"김남인 기자 kni@chosun.com 기자

푸른물 2010. 7. 22. 04:23

60代 되니 비로소 예술과 연애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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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7.21 00:26

닥종이 예술가 김영희씨, 자전적 연애소설 펴내
"14세 연하 독일인과 재혼한 평범치 않은 내 인생 그려… 요즘은 사진·조각에 관심"

"60대가 되니 선녀가 된 기분이랄까…. 남편과 떨어져 살고, 다섯 아이도 각자 제 갈 길을 가면서 혼자가 됐거든요. 해방감을 만끽하면서 하루 10시간을 온전히 작품 활동에 쏟고 있지요."

닥종이 예술가 김영희(66)씨는 "이제 비로소 내 진정한 동반자인 예술과 재혼한 것 같다"고 했다. '재혼'은 그에게 미술작품뿐 아니라 '연애소설'이라는 결실도 안겼다. 총 200만부 넘게 팔린 첫 에세이 '아이 잘 만드는 여자'(1992) 이후 18년 만에 '러브'라는 제목의 소설을 낸 것이다. 그는 첫 남편과 사별한 후 세 아이를 데리고 독일로 가, 열네 살 연하의 독일인과 결혼했다.

김영희씨는 독일 뮌헨에서 자동차로 50분쯤 떨어진 시골마을의 단독주택에 혼자 살면서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30년 넘게 해온 닥종이 인형은 이제 좀 줄이고, 사진·조각·회화 같은 새로운 분야를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했다. /진기주 인턴기자(중앙대 컴퓨터공학 4년)

"제가 연애를 많이 못 해봐서 연애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첫 결혼은 끌려가듯 했고, 두 번째 결혼은 어리고 경제적 능력 없는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다섯 아이를 기르느라 정신없었죠. 그림도 소설도 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에요. 글은 나를 수양하는 기분이라, 그림도 더 잘 되고."

소설은 60대 '경희'와 30대 독일 청년 '파스칼'의 사랑을 그렸다. 몸과 마음이 시들해진 60대 여성이 뒤늦게 사랑에 눈뜬다는 내용이다. '하얀 이를 드러내고 미소 짓는 모습에 눈가의 꽃 주름이 지고 있었다'는 표현 등 책 속에는 노년을 향한 긍정이 가득하다. 파스칼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아름답고 순수한 남성과의 사랑'에 대한 소녀 같은 동경도 숨김없이 그렸다.

"몇 년 전 우연히 만난 30대 독일 청년이 제게 '내가 당신과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더군요. 너무 어린 사람이 그러니까 처음에는 화가 났는데, 점점 기분이 좋아졌어요. '이젠 나도 늙었구나' 싶어 웃고 말았는데, 주변에서 '당신의 평범치 않은 인생을 연애소설로 써보라'고 해요. 그리고 1년 만에 완성했죠."

그는 "두 주인공의 성행위 묘사가 어려웠다"며 "우리 큰오빠가 보면 얼마나 민망할까 싶어 주저했지만 큰 딸(변호사)이 응원해줘 쓸 수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벌써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고국에 돌아가고 싶지만 (이념적인 이유로) 돌아가지 못하고 타지를 떠도는 실향민의 얘기다. 그는 "작품 활동 틈틈이 소설 구상을 위한 자료 수집을 할 것"이라고 했다.

"전에는 너무나 외로웠어요. 밥·청소하고 양말 빨고 그러다 새벽 4시에 다시 작품 구상하고…. 예술가가 아니라 노동자처럼 가족을 부양했는데도 원망이 더 많이 돌아왔지요.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봐야지 싶은 지금의 자유가 좋습니다. 60대에 들어 비로소 '나는 예술가'라는 면류관을 받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