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작은 사안일지라도 학부모에 면담 신청 가능
문제 지속되면 '낙제' 주고 학부모 '방임' 고발할 수도
"체벌 금지 시행하더라도 지도 대책 함께 마련해야"
지난해 미국 테네시주(州) 공립 중학교에 다닌 김민서(14·가명)양은 소풍을 갔다가 친한 친구 6명에게 "우리 같이 점심 먹고 놀자"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교장은 "단체 활동에서 끼리끼리만 몰려다니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며 학부모 소환이라는 '엄벌'을 내렸다. 깜짝 놀란 김양은 학교장에게 잘못을 빌었지만, 교장은 단호했다.김양의 아버지는 다음날 당장 학교에 달려가 교장을 면담했다. 아버지는 "아이가 별 뜻 없이 한 말"이라며 해명했고, 교장은 "다음부터 그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양의 어머니 나성심(49)씨는 "5년간 두 아이를 미국에서 초·중·고교에 보내는 동안 이런 경우가 흔했다"며 "말 한마디 잘못해도 즉각 '정학' 당할 만큼 교칙이 엄하다"고 말했다. 학생에 대한 체벌은 전면 금지하지만, 작은 사안에도 학부모 면담을 신청할 만큼 학교 규율이 엄격해 교사가 권위를 갖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격한 학칙으로 문제아 지도
미국은 상당수 주(州)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는 학생은 드물다. 교육 전문가들은 문제 학생 지도와 조치에 대한 시스템이 철저하게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욕 존애덤스고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김숭운씨에 따르면, 미국 공립학교에는 문제아 지도에 대한 특수 교육을 받은 교사(딘·dean)가 있다. 한국의 '생활지도담당 교사'에 해당하는 셈이다. 말썽꾸러기는 일단 딘에게 보내져 정학실(detention room)에서 지도를 받는다. 딘은 유기정학을 줄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심한 말썽꾸러기들은 '즉각' 정학, 좀 덜한 말썽꾸러기들은 3회 위반시 3~5일 정학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정학을 받은 학생은 매일 정학실로 등교해 일정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교장은 학생의 문제 행동이 지속적으로 계속되면 '낙제'를 시키고, 심한 경우 학부모를 '방임'으로 고발하기도 한다. 학교에는 경찰이 상주해 학생 간 또는 학생·교사 간 폭력 사건이 벌어지면 즉시 제압하고 사건을 처리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의무교육인 초·중학교에서는 정학·퇴학 자체가 불가능하다. 학부모를 불러도 "생업에 바쁘다"며 차일피일 미루거나 오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에 거주하는 학부모 심모씨는 "인정 문화가 남아 있는 한국에는 학생들의 잘못에 관대한 반면, 미국은 학생들의 문제에 대해 엄격히 교칙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체벌이 없어도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는 대신 학교별로 사안에 따라 정학, 학부모 소환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994년까지 독일에서 7년간 유학한 김창환 한국교육개발원(KEDI) 연구위원은 "독일에는 물리적인 체벌은 없지만, 학생의 행동에 따른 다양한 징계 방법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싱가포르는 학교장 허락하에 손바닥이나 옷 위 엉덩이에 가벼운 회초리로 체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한적으로 체벌을 허용한다.
전문가들은 체벌 금지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그러려면 심각한 문제아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확실한 대안도 함께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숭운 교사는 "체벌 전면 금지가 성공하려면 책임을 모두 교사에게 떠넘기지 말고 문제아 지도에 대한 확실한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두세 명의 말썽꾸러기가 교실을 압도해 수업 파괴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환 연구위원은 "서양에선 어린 시절부터 자기 판단 능력을 기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 의식을 갖도록 하는 반면, 한국 학생들은 학습 능력만 요구받다 보니 남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자기반성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교육 전반의 문제로 접근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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