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TV 퀴즈대회 4관왕 박춘록의 인생 비법 | |||||||||
“공부하는 즐거움 다시 찾아준 퀴즈, 이제 ‘할 수 없다’라고 말 못하죠” | |||||||||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40대 주부 박춘록씨. 언뜻 평범해 보이는 그녀는 지난 2년간 국내 지상파 퀴즈대회의 우승을 휩쓴 퀴즈의 달인이다. 2007년 KBS-TV ‘우리말 겨루기’와 ‘우리말 겨루기 왕중왕전’, SBS-TV ‘우주인 서포터스 선발 퀴즈쇼’에 이어 2008년 KBS-TV ‘퀴즈 대한민국’ 우승까지, 깨어 있는 삶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퀴즈 달인 박춘록의 행복한 인생 비법을 들어봤다.
지난해 12월, 전국의 내로라하는 퀴즈 고수들이 모인 ‘퀴즈 대한민국’ 결승전에서 4천9백만원 상금의 주인공이 탄생했다. 2007년 KBS-TV의 ‘우리말 겨루기’를 시작으로 2008년 ‘퀴즈 대한민국’까지, 40대 주부 박춘록씨(41)가 퀴즈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문제가 유치진의 희곡을 묻는 질문이었어요. ‘한국 근대 연극…’으로 시작되는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는데 왠지 내가 아는 문제라는 확신이 들었죠.” 아는 듯 모르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의 입에서 “토막(土幕)입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정답이었다. 퀴즈 고수들은 ‘행운’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누가 나 몰래 내 영혼을 악마와 거래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행운이 믿기지 않았다”라는 것이 당시를 회상하는 그녀의 심정이다. 그렇게 고졸 학력의 평범한 40대 주부 박춘록씨는 대한민국 퀴즈 영웅으로 등극했다. 그녀의 첫 도전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알뜰살림 장만 퀴즈’가 대전에서 지역 예심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이 기회에 살림 장만 좀 해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예심에 참가했다. 매일 아침 연속극보듯 즐겨보던 퀴즈 프로그램이었다. “갑갑하고 무료한 일상이 계속되던 결혼 1년 차였어요. 퀴즈를 보면서 아직 내 머리가 쓸 만하구나 느끼곤 했는데 가까운 곳에서 예심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참가했죠. 운 좋게 예심을 통과하고 본선까지 진출해서 4명 중 3등을 했어요. 어찌나 긴장을 했던지 모니터에 뜨는 제시어도 보지 못한 채 방망이를 휘둘렀으니 정답을 맞힐 수 있었겠어요? 같이 갔던 남편한테도 엄청 면박을 받고 저 역시도 너무 창피해서 한동안 두문불출했을 정도예요.” 일생일대의 ‘망신’이 될 뻔한 경험이었지만 그때 받았던 장식장이며 냉장고 등 굵직굵직한 살림들은 지금까지 그녀의 주방을 지키고 있다. 볼 때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조금은 부끄럽지만 뿌듯한 훈장들이다. “어려운 문제에도 척척 정답을 내놓는 참가자들을 보면 ‘혹시 PD랑 아는 사람 아냐?’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어요.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나온 다른 참가자들에 비하면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죠. 그래도 그때 그 경험이 제가 퀴즈 프로그램에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어요.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문제를 다 듣고 답을 말하자는 것 하나는 확실하게 깨달았죠(웃음).” 일주일에 100권의 책 읽으며 공부 삼매경, 퀴즈 타고 모스크바로 첫 방송 출연은 그렇게 실패로 끝났지만 그 후로 퀴즈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져갔다. 첫 도전 이후 스스로 방송 부적격이라는 판정을 내리고 다시는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서 망신당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지만 그럼에도 매주 퀴즈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시간이 되면 남편과 채널 선택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2006년 ‘우리말 겨루기’가 청주로 지역 예심을 왔을 때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부탁이 통했는지 그녀는 두 달 후 치러진 본선에서 우승, 연말 왕중왕전에 나가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하며 10년 전 ‘굴욕’을 깨끗이 씻게 된다. 이제까지 여러 퀴즈 프로그램에 나갔지만 우리말 겨루기에서 달인이 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제가 9대 달인이었는데 우승은 쉬워도 달인이 되기는 쉽지 않거든요. 무대에서 내려오며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어요. 그 전까지 퀴즈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았던 남편도 제가 우승을 하고 오니 슬그머니 저에게 리모컨을 넘기더라고요(웃음).” 우리말 겨루기 우승은 또 다른 퀴즈 프로그램 출연으로 이어졌다. 우리말 겨루기 왕중왕전에서 만나 친구가 된 다른 참가자와 함께 2인 1조로 ‘우주인 서포터스 선발 퀴즈쇼’에 나가게 된 것. 산업체 고등학교를 나와 우주에 대해 아는 거라곤 빅뱅과 태양계 아홉 개 행성(명왕성은 얼마 전에 행성의 지위를 박탈당했다고 덧붙인다)밖에 없었던 그녀에게는 우리말 겨루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다. “‘우리말 겨루기’는 평소 책을 많이 봐서 쉽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상식을 다루는 다른 퀴즈는 방대한 지식을 요하기 때문에 생각조차 할 수 없었어요. 준비 기간도 너무 짧았고 자신이 없었는데 ‘우리말 겨루기’를 통해 얻은 자신감이 한몫했죠.” 예심 접수를 하고 일주일 정도 남은 준비 기간 동안 도서관과 인터넷, TV를 통해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들 학교에 들러 우주에 관한 책도 빌려다 읽고 아이들이 보는 잡지에서 공부거리를 찾으며 닥치는 대로 파고들었다. 어림잡아 일주일간 100권 가까운 책과 잡지를 읽은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모은 자료들만 A4용지 40장이었다. 설거지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냉장고와 싱크대에 단어들을 적어놓은 포스트잇을 빽빽이 붙여놓고 틈나는 대로 눈을 맞췄다. 막막하긴 했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퀴즈의 묘미에 빠져들게 된 계기였다. “처음 보는 단어를 익히는 기분은 그야말로 감동이었어요. ‘오르트구름’, ‘카이퍼밸트’, ‘헤일로’ 등 퀴즈가 아니었으면 내가 평생 몰랐을 것들을 배워가며 설레고 뿌듯한 기분을 느꼈죠. 사람들이 왜 공부를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렇게 우주 공부에 빠져든 그녀는 결국 항공우주연구팀, 멘사팀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모스크바행 티켓을 거머쥔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우주로 향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경험과 그 후 ‘퀴즈 대한민국’ 우승까지, 퀴즈는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경험을 선물했다. 공부보다 일을 택해야 했던 가정형편, 중장비 자격증만 5개 사실 학창 시절 그녀는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오랜 시간 자리 잡고 앉아 공부하지 않아도 중학교 때까지 성적은 상위권이었을 정도로 공부는 곧잘 했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집에서는 그녀의 성적을 반기지 않았다. “몸이 편찮으셨던 아버지 대신 엄마가 식당일, 막일 가리지 않고 하시며 3남매를 키우셨어요. 중학교 때 엄마가 팔을 다쳐서 수업료를 못 냈는데 공부를 계속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도 공부를 포기할 수 없어서 집에 말도 안 하고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는 산업체 고등학교에 지원했어요. 돈을 벌어서 대학에 가자는 포부였죠.” 고등학교 때에도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입시쯤에 몸이 아파 학력고사 점수가 기대 이하로 떨어졌다. 대전전문대에 합격했지만 당시 등록금은 50만원, 고등학교 내내 꼬박꼬박 어머니에게 월급을 드렸던 그녀에게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댈 여유는 없었다. 대학등록금을 위해 적금을 들던 친구들처럼 야무지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되지만 그때는 그저 어머니의 웃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대학 대신 속기학원에서 6개월간 공부하다 고향인 충남 부여로 내려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게 ‘고압가스화학기능사’ 자격증이었다. “그때는 남자와 여자의 보수 차이가 많이 났어요. 고압가스화학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남자와 동등한 조건으로 일을 해보자 했는데 막상 따고 나니 여자는 현장에 투입이 안 되더라고요. 사무실에 앉아 경리일을 하다가 직업훈련원에서 중장비 훈련생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는 원서를 넣어 합격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선머슴 같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적성에 맞았는지 5년 가까이 전국을 돌며 중장비 일을 했어요.” 롤러운전기능사, 굴삭기운전기능사 등 그녀가 가진 중장비 자격증만 5개다. 남편을 만나 2년 연애 끝에 자취방에서 아무것도 없이 결혼생활을 시작했지만 두 사람 다 성실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다. 일을 그만둔 건 결혼하고 1년쯤 돼 첫째를 가지면서부터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성 거대결장을 앓았던 큰아이는 입원과 수술을 반복할 정도로 몸이 약했고 아이를 낳은 후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안 몸의 균형을 잃은 그녀는 무력감과 우울증에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큰아이의 돌이 채 지나지도 않았을 무렵 허리를 다쳐 1년 정도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직장생활은 엄두도 못 냈다. “저를 둘러싼 고통스러운 상황에 지쳐갈 때쯤 근심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것이 바로 퀴즈 프로그램이었어요. 저 역시 퀴즈 프로그램에는 특별한 사람들만 나간다고 생각했는데 작은 용기로 한 번 두 번 도전하다 보니 자신감을 얻었고 퀴즈 영웅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네요. 도전하기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퀴즈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후 많은 사람들이 상금을 어떻게 썼는지 궁금해한단다. 2천만원 남짓 됐던 우리말 겨루기 상금은 프로그램에서 밝힌 대로 친정 어머니 집을 사드리는 데 썼다.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하신 엄마에겐 항상 죄송한 마음이 있었어요. 산꼭대기 집이라, 몸이 불편한 엄마가 다니기에는 많이 위험했거든요. 언젠가 꼭 아랫동네로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다가 굳은 의지로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한 거예요. 아무리 공부가 재미있어도 두꺼운 사전을 볼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꼭 상금 타서 엄마 집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꾹 참았죠.” 그리 풍족한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흔쾌히 “그러자”고 해준 남편에게는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다. 허리가 아파 매일 누워 있어야 했던 시절, 집으로 엄마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면 “엄마 주무세요”라고 대답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엄마 공부하세요”라고 대답한다. 여간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다. “퀴즈를 만나기 전에는 그동안 살아온 인생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산업체 고등학교를 선택했던 것이나 대학을 포기했던 것에 대해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도전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고요. 이제는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기에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는 생각마저 들어요.” 무작정 공부가 하고 싶어서 남들이 공순이라고 놀리던 산업체 고등학교를 지원했던 그때처럼, 좋아서 하는 공부를 하니 인생이 더 행복해졌다. 몰랐던 걸 알아가는 기쁨, 어쩌면 나만 알고 있을 것 같은 은밀한 즐거움, 퀴즈는 무료했던 그녀의 인생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은 그녀가 퀴즈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선물은 자신감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지더라고요. 아이들 공부 잘하는 것, 좋은 대학 가는 것은 아이들의 꿈이지 엄마의 꿈이 아니잖아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자신의 목표를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것이 퀴즈든, 다른 것이든 열정을 가지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함께 퀴즈를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는 60, 70세가 넘은 분들도 많다며 나이와 열정은 반비례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못할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도전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도전할 꿈이 있어 행복한 그녀는 오늘도 하루가 즐겁다.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원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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