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수철 서울대 교수·소아청소년정신과
아동 대상 성범죄자 약물치료는
재범률을 8분의 1로 낮추는 효과…
전문가 평가와 상담병행해야 효과 극대화
국회가 아동 성폭행 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내년 7월부터 이른바 '화학적 거세(去勢)'가 시행된다. 조두순·김길태와 같은 상습 성폭력 범죄자뿐 아니라 초범자도 화학적 거세 대상자가 될 수 있다. 대상자의 연령은 '만 19세 이상'으로 하고 피해 아동의 연령을 '16세 미만'으로 정했다.우리나라에선 강간범죄가 2008년에만 1만5094건이 발생했고,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성폭력은 재범률이 60%에 달해 많은 나라에서 아동 성폭력에 대해서는 무기형 이상의 엄한 형벌에 처하거나 이처럼 화학적 거세를 하고 있다.
아동 성범죄자들은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아동에 대한 성 충동을 갖고 있다가 출소 후에는 다시 검거되지 않기 위해 더 교묘한 방법으로 성범죄를 저지른다. 화학적 거세란 약물을 이용해 이 같은 성범죄 재발을 막는 제도다.
성범죄자의 성욕과 폭력성을 줄이기 위해 남성 호르몬 억제 약물이나 피임 약물을 주사해 고환의 테스토스테론 생성을 억제하거나 테스토스테론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성 기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욕구가 없도록 해 성범죄의 재범률을 낮추는 방식이다. 성범죄자들을 평생 감옥에 가두기보다는 그들이 적정 형기를 마친 후에는 다시 일상적인 생활에 복귀하도록 허용하면서 성범죄의 재발은 예방하자는 것이 약물치료의 목적이다. 그런 점에서 윤리적이란 주장도 있다. 그동안 투옥을 통한 처벌이 성범죄자들의 교화에 별 효과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약물치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강제로 약을 주사하는 것이 비윤리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당사자에게 동의를 얻고 주사하지만, 과연 투옥 중인 사람이 윤리적으로 공정한 동의를 할 수 있는지, 혹은 가석방을 조건으로 하는 동의가 공정한지라는 쟁점이 있다.
또 강제적으로 약물을 주사하는 게 아니라면 한시적으로 투여하다가 중단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고, 그러면 다시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약점도 있다. 약물을 중단하면 오히려 성충동이 커진다고도 한다. 부작용도 쟁점이다. 비록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심각한 부작용은 없지만 탈모나 여성형 유방, 얼굴 홍조, 골밀도 감소 등이 생길 수 있고 우울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유럽에서는 스웨덴·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약물치료가 성범죄의 재범률을 낮추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들 나라에서는 약 40%에 달하던 재범률이 5% 선까지 줄었다. 스위스·독일·영국·프랑스 등도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약물치료법을 도입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강제적인 약물치료에 관한 논의도 진행 중인데, 2009년 9월에 폴란드에서 아동 성추행 범죄자에게 강제적으로 약물치료를 시행하는 법령이 EU 최초로 지난 6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66년에 존 머니라는 의사가 소아성애 충동으로 치료받는 환자에게 성욕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한 것이 최초의 사례다. 1996년에 캘리포니아 주가 아동 성추행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처음 약물치료를 도입하였다. 이후 플로리다·조지아·아이오와·루이지애나·몬태나·오리건·위스콘신·텍사스 주가 뒤를 이어 약물치료법을 도입하였으며, 일부 주는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수술적 거세를 도입하기도 했다. 캐나다에서는 자발적인 선택에 한해서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국가차원에서 이 같은 화학 요법을 실행한 사례는 아직 없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나 예방조처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으나 약물치료의 도입은 점점 늘고있다. 그러나 약물치료의 집행에 있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의 정신병리에 대하여는 전문의의 철저한 평가가 필요하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정신치료·상담 등이 병행되어야 약물치료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어떤 약물을 언제부터 투여하며, 언제까지 투여하여야 할지 등에 대해서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아울러 성폭력을 다루는 전문가의 양성 및 아동·청소년·부모에 대한 성폭력 예방 교육도 정기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