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다시 쓰는 연서(戀書) - 정진규 (1939 ~ )

푸른물 2010. 6. 1. 11:27

다시 쓰는 연서(戀書) - 정진규 (1939 ~ )

사랑이여 그렇지 않았던가 일순 허공을 충만으로 채우는, 경계를 지우는 임계속도(臨界速度)를 우리는 만들지 않았던가 허공의 속살 속으로 우리는 날아오르지 않았던가 무엇이 그 힘이었던가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는



사랑에 이끌리는 순간은 전광석화(電光石火)보다도 빠른 찰나다. 허공을 날아가 상대에게 꽂히는 그 마음의 경이를 확인시키느라 시인은 다짐하듯 ‘않았던가’고 되풀이해 반문한다. 사랑에의 경사, 그 몰입이야말로 텅 빈 세계를 아름다운 충만(充滿)으로 채운다. 이 시인은 또 다른 시, ‘연서(戀書)’에서 사랑은 “타지 않은 글자”라고 말한다. 재가 되기 직전 까만 종이 위로 몸을 떨며 떠오르는 하얀 글자. 스러질 수 없는 최후의 떨림이 지극한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 마음 앞에서 언제나 안타까운 것이다.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