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대낮을 짖다 - 이 진 (1957~ )

푸른물 2010. 6. 1. 11:23

대낮을 짖다 - 이 진 (1957~ )

개목걸이로 채운

대낮이 심심하다

노란 페인트칠 벗겨진 철제대문 안

쭈그린 개밥그릇 앞에

한낮의 햇살이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



골목길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에

바짝 귀를 세우면

먼 하늘로 발돋움하는

낮달 한 척

먹먹한 고요가

살아서 출렁거린다



봄인가 했더니 어느새 여름이다. 한낮의 적요가 일상을 더욱 적막하게 가라앉히는 날들이 잦아졌다.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면 텅 빈 골목, 사람은 안 보이는데 발소리만 혼자 언덕길을 오른다. 그러나 적막을 깨뜨리는 것은 느닷없는 발소리가 아니다. 무료를 떨치고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진 탈출에의 염원이 마음 깊숙한 곳까지 바람의 발자국을 새기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이 지루한 일상의 멀미는 멀리 낮달의 자리에까지 외로운 꿈을 펼쳐놓는다.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