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시가 있는 아침] 코르셋 [중앙일보] 기사

푸른물 2010. 5. 22. 09:24

시가 있는 아침] 코르셋 [중앙일보]

2010.05.13 00:0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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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셋 - 이규리(1955~ )

꽉 조인 하루가 있어요 그대는 내게 소화불량이거나 체지방이에요 그대를 만나러 가는 날에는 아랫배가 긴장해요 내가 코르셋을 입는 것은 물컹물컹 그대에게 다가가는 말을 살 속에 죄어 놓는 거지요 쑥 비어져 나오는 추억들도 팽팽히 눌러놓지요 꽉 찬 엘리베이터 속처럼 살들이 서로에게 닿아 가는 숨결이란 아찔한 허기 같아요 편식과 과식이 공존하는 시대, 내 안에 그대는 터질 듯 자라 있어요 그리움이 막 조여 와요 그건 썩지 않는다 말하지 말아요 허연 콜레스테롤 같은 시간 도려내고, 내 흰 뼈와 살들만 남길 거예요 슬픈 감옥인 코르셋을 벗을 거예요



여인에게서 살은 육체적 과잉과 결핍의 문제만이 아니다. 뭇 시선의 한가운데 내세워진 나신(裸身)이며, 갈등 그대로의 탑이다. 그러나 욕망과 충동, 억압과 금기로 어질러진 세상 속에서 살들은 함부로 풀어헤쳐질 여지가 없다. 부정하지도 분출하지도 못하는 뜨겁고 팽팽한 자아의 의욕을 부려놓으려는 이 해방에의 충동은 거듭남에 대한 절절한 희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몸의 갈증을 진솔하게 드러내 보인다. ‘코르셋’은 여인의 삶을 얽어매는 으뜸 세목인 것이다.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