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시가 있는 아침] 물결 앞에서 [중앙일보] 기사

푸른물 2010. 5. 22. 09:19

시가 있는 아침] 물결 앞에서 [중앙일보]

2010.05.14 00: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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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 앞에서 - 이시영(1949~ )

울지 마라

오늘은 오늘의 물결이 다가와 출렁인다

갈매기떼 사납게 난다

그리고 지금 지상의 한 곳에선

누군가의 발짝 소리 급하게 울린다


울지 마라

내일은 내일의 물결 더 거셀 것이다

갈매기떼 더욱 미칠 것이다

그리고 끓어 넘치면서

세계는 조금씩 새로워질 것이다



삶에게 인내의 시간을 권면하는 이 짧은 잠언은 오늘의 고통보다 내일의 그것이 견디기 수월할 것이라는 잔혹한 믿음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설혹 내일의 파도가 오늘의 물결보다 사납다 할지라도 그것과 맞서려는 무모함을 포개서 세계가 새로워진다는 것, 그리하여 짧은 생을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이 시의 인내의 이유이며, 변화에의 전망이다. 다소 무책임하게 자연의 섭리까지 끌어들인 이 권유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역설적인 충족이 있다. 아무런 위로가 없는 것이 삶의 실체라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의 권고가 아름답고 아프다.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