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는 추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푸른물 2010. 5. 15. 09:44

나는 젊어서는 마흔이 되면 어떻게 살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마흔 살은 까마득하게 생각 되었고 마흔 살은 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늙으면 추해진다는 사실이 싫어서 나는 마흔 살이 되면 어떻게 살지? 하는 철없던 시절이 있었기에 마흔 살이 될 무렵부터 나는 추해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내 나름대로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안하던 액세서리를 즐겨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의 멋내기의 첫걸음이 시작 되었다.

이를테면 용감하게(?) 귀를 뚫어서 안하던 귀걸이도 하고 팔찌도 하는 식으로 나는 겁 없이

용감해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액세서리는 귀걸이, 팔찌, 반지. 목걸이 순으로 외출 할 때는 귀걸이는 나의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나이 들수록 깔끔하게, 우아하게, 품위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공식적인 모임, 행사에는 늘 정장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래서 나는 옷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내 지갑의 형편에 맞게 창고 대방출이라는 광고지가 보이면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다니게 되었다. 거기서 한 두 개만 건져도 나는 보물을 찾은 듯이 좋아하면서 집에 오고는 하였다.

그렇게 모인 옷이 하나 둘씩 생기면서 내가 옷을 살 때는 제일 먼저 디자인을 보고 색상을 보고 사이즈를 보고 재질을 본다. 중년이 되면서 원색보다는 무채색 계열을 찾게 된다.

옷을 고를 때는 마음에 드는 상의면  내가 갖고 있는 바지나 스커트에 맞는 것을 고르고

하의면 그 반대로 생각하면서 고르고는 한다.

그래서 내 옷은 상. 하가 제 짝인 것이 거의 없고 대강 비슷하게, 아니면 반대로 맞추어서 입는다. 그 부족한 점을 스카프나 모자나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어서 내 옷의 부족함을 그런 식으로 보충하고는 한다.

나는 옷을 복잡한 디자인 보다는 단순하면서 깔끔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그것은 젊어서부터 변하지 않는 내 취향이기도 하다.

내가 계절을 앞서 옷을 사는 것은 이월상품의 싼 가격의 매력 때문이기도 하고 미리미리 준비하는 나의 성격과도 잘 맞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편한 옷이 좋다. 그래서 나이만큼 옷을 입는 다는 말이 있나 보다

그래서 내 사이즈를 입으면 불편하다. 한 사이즈를 더 크게 입는다. 그리고 불편한 옷은 멀리하게 되고 편한 옷을 가까이 하게 된다.

그런데 철이 바뀌면 입고 나갈 옷이 없다. 잘 버리지도 정리하지도 못하는 성격이라 몇십 년 된 옷도 그대로 갖고 있어서 내 작은 옷장은 옷으로 넘쳐 나고 내 방에 있는 긴 옷걸이에도 넘쳐 나고 건너 방에 있는 붙박이 삼단 옷걸이에도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계절이 바뀌면 옷을 안 입는 옷은 버려야지 하고 큰 맘 먹고 옷장이나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을 보면 저 밍크코트는 몇 년째 안 입는데 남편이 잘 나갈 때 결혼해서 처음으로 사 준 옷이라서 버리지 못하고 있고 저 옷은 내가 처음으로 양장점에서 맞춘 옷이라서 버리지 못하고 이 옷은 언젠가는 한 번쯤 입을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하는 식으로 큰 맘 먹고 시작한 옷 버리기는 들었다 놨다 하다가 다시 제 자리에 놓는 것으로 끝이 나고는 한다.

그 많은 옷에도 계절이 바뀌면 입을 옷이 없다. 젊어서는 같은 옷을 계속 입었더니 어린 아들이 엄마는 지루하지도 않느냐고 어른스럽게 말했을 정도였는데 그 때는 젊음이라는 빛나는 후광이 있어서 옷이 그리 문제가 안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년이 되면서 같은 옷을 연달아 입고 싶지가 않다. 특히 교회 갈 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최고의 것으로 계절에 맞게 입고 간다. 가능한 한 같은 옷을 두 번 입고 교회 가지는 않는다 . 하다못해 상의가 그대로면 하의를 바꾸는 식으로라도 나는 변화를 준다. 하나님 앞에 나가면서 사람도 후줄근한데 옷조차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하나님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예의라고 생각해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우아하다는 말과 멋쟁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모르는 사람에게서도 듣고 지인에게서도 듣는다. 그럴 때면 정말 내가 멋쟁이인가?  믿기지 않아 나 자신에게 반문 할 때가 있다. 그런 말을 듣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추해지기 싫어서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옷에는 어떤 스커트가 또는 바지가 어울릴까를 생각하고, 어떤 스카프를 할까? 골라서 해보고  어떤 액세서리를 할까 생각도 하고 실제로 해보기도 하면서 제일 그럴듯한 것으로 하는 것으로 선택하는 것이 나의 노력이라면 노력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추해지지 않으려고 내 나름대로 노력을 하다 보니 멋쟁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이 이 경우에도 해당 되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겉 모습을 가꾸려고  노력한 만큼 내면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나 를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아서 부끄럽다. 내면이 아름답다면 굳이 겉 모습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내면의 세계는 텅 비어서 초라하다는 말을  내 식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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