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는 스카프를 좋아한다

푸른물 2010. 5. 14. 19:06

나는 스카프를 많이 가지고 있다. 작은 것도 있고 큰 것도 있고 긴 것도 있다. 빨강 색도  주홍색도 있고 파랑색도 연두 색도 있다. 아니 무지개색이 다 있다. 그 중에는 내가 산 것이 대부분이지만 선물 받은 것도 꽤 있다. 새 것도 있고 몇십 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고색창연한(?) 것도 있다. 내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스카프는  천 원에서 이삼천 원 정도의 값싼 것이 대부분이다. 언젠가 백화점에서 눈에 띄는 스카프의  값을 보고는 속으로 기절할 정도였다. 내 기억으로는 이십몇 만원 이었던 것 같다

젊어서는 스카프를 잘 하지 않았다. 모자쓰기처럼 중년부터 시작한 새 버릇이다.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새 옷을 사는 것보다 철 지난 이월상품의 옷을 사다보니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코디연출을 위해서다. 나는 여름에는 겨울 옷을 ,겨울에는 여름 옷을 사는 것으로  내 옷은 천 원에서 시작하여 만 원이 넘는 옷이 거의 없다.  그래도 나는 멋쟁이라는 소리를 곧 잘 듣는다. 그것은 순전히 스카프의 덕일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 나다.

어느 행사에 이천 원을 주고 산 정장을 입고 참석했을 때 지인이 너무 멋있다고 연신 감탄을 해서 듣기에 민망한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역시 오래 되었지만 그 옷에 맞는 스카프를 했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스카프를 가지고 코디를 한다.  그러면 유행이 지나서 외면 당해 한껏 주눅이 들어  나에게  왔던 옷은 과거를 잊은 채 당당한 모습으로 탈바꿈 하는 것이 나는 기쁘다.

 옷에게 생명을 불어 준 것 같아서이다.

그런데 스카프로 인해 민망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 아들네 식구가 왔는데 다섯 살 난 손자가 자기 엄마가 자는 사이 내 스카프를 있는 대로 다 꺼내서 장난을 하고 있는데 내가 집에 오니 거실이고 방이고 스카프가 정신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때 며느리가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에 당황스럽고 민망했었다. 그게 일이천 원짜리라고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우습고 오래 된 것 들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어쨌든  내 속살을 보인 것처럼  당황스러웠고 은밀한 비밀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스카프가 많다는 것 가지고도 며느리와 아들의 눈치가 보이니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 어른이라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스카프가 알려준 것 같아서  씁쓸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스카프를 좋아한다.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또 살 것이다 긴 스카프를 하고 오픈 카를 타고 가던 어느 외국 여배우가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서 사망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생각나더라도 나는 오픈카를 탈 일이 없으니 마음 놓고 스카프를 좋아할 것이다. 나의 주눅 든 옷에 생명을 불어 넣기 위해서도 나는 계속 스카프를 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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