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문(門) - 이영광(1967~ )

푸른물 2010. 5. 8. 10:12

문(門) - 이영광(1967~ )

가지 말아야 했던 곳

범접해서는 안 되었던 숱한 내부들

사람의 집 사랑의 집 세월의 집

더럽혀진 발길이 함부로 밟고 들어가

지나보면 다 바깥이었다

날 허락하지 않는 어떤 내부가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한 번도 받아들여진 적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나는 지금

무엇보다도, 그대의 텅 빈 바깥에 있다

가을바람 은행잎의 비 맞으며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닿아서야

그곳에 단정히 여민 문이 있었음을 안다


생활에서, 사랑에서, 그리고 글쓰기에서, 겹겹의 문을 열어젖혔으나 그때마다 그 안에 또 다른 문들이 단단하게 여며져 있어, 여전히 문밖에 세워졌었다…면! 거쳐 온 삶의 경로들이 지나고 나니 다 바깥이었다는, 이 문 앞에 선 장탄식과 환멸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떤 구걸로도 허락되지 않는 내부들이 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볼 수조차 없는 삶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일찌감치 생의 의욕을 제거해버린 절망이라면 차라리 아프다. <김명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