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삶 - 고은(1933∼ )삶 - 고은(1933∼ )

푸른물 2010. 4. 18. 07:57

삶 - 고은(1933∼ )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이 왔다가 갈 따름이다.


바람이 일지 않아도 잎새는 지고, 지켜보는 이 없이도 쓸쓸한 바다는 밀물과 썰물로 영원을 교대한다. 자연의 이법 속에서 우리는 가난한 목숨 외에 무엇을 더 가졌다 하겠느냐. 지상의 삶이란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 자체를 누리는 일. 젊은 내외여, 우리가 삶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더라도 이미 자연은 우리가 내려놓을 아이들에게도 살아내는 일의 숙명을 가르친다. 우리는 다만 보잘것없음을 겪고 나야 하는 생명이니! <김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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