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가족→딩크족(族)→딩크펫… "사회도 가치관도 바뀌면서 더 다양한 가족 나타날 것"
대기업에 다니는 결혼 4년 차 신모(38)씨는 한 달 전 사내아이를 입양했다. 자녀 없이 부부 둘만 살기엔 좀 허전했기 때문이다. 아이 이름은 '쫑이', 4개월 된 마르티즈 강아지다. 평일엔 근처 사는 친정어머니에게 맡겨 놓고 퇴근 후나 주말에 데리러 간다.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기는 맞벌이 부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이들 부부는 "아기는 절대 낳지 않겠다"고 양가(兩家)에 선언해놓은 상태다. 맞벌이하면서 자녀를 낳지 않고(DINK·Double Income No Kids) 대신 애완동물(pet)을 키우는 '딩크펫 가족'인 셈이다.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한 복향숙(38)씨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 대신 개 1마리와 고양이 4마리가 뛰어나와 '엄마'를 반긴다. 개를 좋아하는 복씨와 고양이를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이 이런 '자녀 구성'을 낳았다. 복씨는 "자녀를 안 낳는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고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장혜경 박사는 "애완동물이라도 정을 주고 친밀감이 있으면 가족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딩크펫 가족'은 다양한 형태로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가족의 한 유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자녀 없이 부부만 있는 가구 비중은 2000년 12.3%(146만 가구)에서 2007년 14.6%(239만 가구)로, 7년 만에 64% 증가했다. 싱글맘·싱글대디 가정을 합친 '한 부모 가족' 역시 같은 기간 23%(115만 가구→142만 가구) 늘어났다.
- ▲ "든든한 장남, 귀여운 막내" 복향숙씨에겐 뭐니뭐니해도 장남인 개 소프(말라뮤트·8)가 가장 믿음직하다. 복씨 부부는 세상에 핏줄을 남기는 대신, 개·고양이며 토끼·거북이 같은‘동물 자식’을 선택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다양한 가족이 등장하면서 요즘 초등학교에서 교사들은 "엄마 얼굴 그려봐" 같은 과제를 가능한 내지 않는다. "엄마 모셔와"나 "아빠는 뭐 하시니?" 같은 말도 교사들이 조심하는 말이다. 엄마나 아빠 대신 '보호자'라는 표현이 정답이다. 가족 형태가 급격히 달라지면서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학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가족의 변화의 최대 원인은 이혼 증가 등에 따른 전통적 가정의 해체다. 2000년대 들어 이혼이 급증해 1998년 11만6300건이던 이혼 건수는 2003년 16만6000건 등으로 늘었다. 다만 지난해는 이혼 숙려제(熟慮制) 도입에 따른 신고 공백으로 11만6000건의 이혼 건수를 기록했다.
IMF 경제위기 등을 겪으면서 아이를 버리는 부모도 많아졌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부모+자녀로 구성되는 전통적 가족이 줄어들고 대신 싱글맘, 싱글대디, 조손(祖孫) 가정 같은 새로운 가족 형태가 늘어난 것이다.
국제결혼이 증가하고 국내 체류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다문화 가족'이 주요한 가족 형태로 정착한 것도 새로운 가족 트렌드다.
전문가들은 가치관 변화도 중요한 이유로 들고 있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은 "사회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는데 가족만 안 바뀔 수 있겠느냐"며 "앞으로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선임연구위원은 "압축 경제성장과 IT산업의 발달로 가치관과 사회 변화 속도가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것이 급속한 가족 해체와 재구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영란 전문위원은 "가족의 의미가 '혈통'에서 '정서적 공동체'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엔 자식을 낳는 것이 '대(代)를 잇는다'는 차원의 의무였지만, 이제는 부부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한 '선택 사항'이 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변화하는 가족 형태를 '어딘가 문제 있는 가족'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개인들의 선택인 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옥선화 한국가정학회장(서울대 교수)은 "어떠한 형태의 가족도 그들 나름의 삶이라는 시각으로 포용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