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가족
가족의 정이 그리워 육아·경제적 사정으로
다시 합치는 사람들 많아
부부 단위, 심지어 개인 단위로 쪼개지는 핵가족의 시대. 그런 속에서도 가족애(愛)에 굶주려 다시 대가족으로 합치는 사람들도 있다. 4대(代)가 함께 사는 고광영(69)·서옥례(68)씨 가족이 그렇다.고씨네 4대 가족의 집은 강원도 원주시에서 자동차로 20분 떨어진 둔둔 2리에 있다. 31일 꼬불꼬불 황톳길을 따라 고씨네 집에 도착하자, 뒤뜰에 묶인 개가 컹컹 짖기 시작했다.
빨랫줄에선 1대 지영희(86) 할머니의 하얀 모시 저고리와 4대 인섭(1)이의 아기 바지가 나란히 볕을 쬐고, 마당 수도꼭지 옆 고무 대야엔 일곱 식구가 먹을 복숭아가 찬물에 동동 떠 있었다.
이 집은 가족 구성도 전통적이다. 지영희 할머니와 고씨 부부, 고씨의 둘째 아들 원락(39)씨와 베트남인 아내 응엔티 쿠이(22)씨, 원락씨가 전처(妻)와 낳은 딸 미향(13)이와 올해 태어난 인섭이까지, 4대가 모여 산다.
약 60호가 모여 사는 이 마을뿐 아니라, 인구 31만명의 원주시에도 4대가 함께 사는 가족은 고씨네밖에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4대 가족은 갈수록 줄어들어 지난 2005년엔 1만5902가구에 불과했다.
하지만 "대가족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학중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은 말했다. 도시화·핵가족화 속에서도 전통적 대가족은 달라진 형태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존속한다는 것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4대 이상이 생존할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또 자녀 양육이며 경제적 어려움 같은 현실적 문제 때문에 한 지붕 아래 살진 않아도 부모 거주지 주변에 모여 사는 '위성(衛星) 가족'도 많아졌다.
강 소장은 이렇게 범(汎)대가족에 속하는 '새로운 대가족'이 앞으로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씨네처럼 쪼개졌던 대가족이 다시 합친 '헤쳐 모여 가족'도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한 대가족의 하나다.
- ▲ ‘가족’이라는 단어는 세대·국적이 다른 고광영·서옥례씨네를 하나로 단단하게 묶어주는 끈이다. 한때 핵가족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 된 고씨네가 인근에 사는 셋째 아들 부부(뒷줄 제일 왼쪽)까지 함께 모여 지난달 31일 가족사진을 찍었다./원주=박동주 인턴기자(중앙대 사진과 3년)
고씨네가 지금 같은 4대 가족이 된 건 약 3년 전이다. 식구들이 대를 걸쳐 모여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애당초 없었다. 아들 셋과 딸 넷은 각자 결혼한 후 경기도 부천, 광주광역시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개인 사업을 하는 고씨의 장남은 경북 김천에 터를 잡았다. 집에는 고씨의 노모와, 평생 고추·옥수수·참깨 농사를 지어 온 부부만 남았다.
그러던 중 2006년, 원주 시내에서 포크레인 중장비를 운전하던 둘째 아들 원락씨가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고씨네 집으로 들어왔다. 이혼 때문이었다. 일이 생기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집에 들어올 수 없었던 탓에 아내와 갈등을 빚었고, 불화는 이혼으로까지 이어졌다.
혼자 사춘기 딸을 키우기 어려웠던 원락씨는 아이를 데리고 본가(本家)로 돌아왔다. 돌아온 그를 '가족'은 따뜻하게 품어줬다. 도시화·현대화의 현상이랄 수 있는 이혼이 오히려 고씨네를 대가족으로 회귀시킨 것이다.
재작년 원락씨가 재혼한 베트남 출신 새 아내가 아들을 낳으면서 고씨네 4대 가족은 지금 같은 모습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렇게 재탄생한 고씨네 가족이 사는 모습은 과거 전형적인 대가족과는 조금 다르다. 증조할머니가 손거울을 앞에 두고 은비녀를 꽂은 쪽찐 머리를 매만지는 동안, 옆에 앉은 10대 증손녀는 휴대전화로 문자 보내기에 바빴다.
한국말이 서툰 둘째 며느리는 누군가가 말을 걸면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래도 시할머니가 일어설 때면 달려가 지팡이를 쥐어 드리고, 과일도 깎아 시부모에게 들고 오는 그는 고씨네 가족으로 융화돼 있었다.
형제가 6남매라는 그녀는 "베트남 (친정)집도 식구 많아…. 여기 식구들도 우리 집과 비슷해, 집 생각 나서 좋아요"라고 서투른 한국어로 말했다.
◆대가족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족의 형성 과정은 조금 다를지언정 서로 부대끼며 정을 나누는 모습은 전통적 대가족 그대로다.
17살에 시집 온 서옥례씨는, 35살에 남편과 사별한 시어머니로부터 매서운 시집살이를 겪었다. 서씨는 "처음엔 그렇게 무섭던 양반이 이젠 친어머니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실제로 말귀를 잘 못 알아듣는 시어머니 지영희 할머니와 의사 소통이 가장 잘 되는 이가 바로 며느리 서씨다.
원주시에서 창틀 수리를 하는 셋째 아들 기락(32)씨 부부는 수시로 본가를 찾아온다. 셋째 며느리 최미령(29)씨가 대가족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년 1월 출산하는 최씨는 이날도 고씨네에 와 있었다. 그는 "아이를 봐 주실 수 있는 어르신도 계시고, 핵가족에선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좋아서 아기가 태어나면 우리도 들어와서 살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서옥례씨는 "설·추석 때 손자·손녀까지 다 모이면 50명쯤 된다"고 말했다. "북적거리고 정신이 없죠. 그래도 그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니에요? 요새는 일 때문에 가족들도 각각 떨어져 산다는데, 그런 거 보면 안됐어요."
증조할머니가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증손자 인섭이 곁에 쪼그리고 앉아 잠든 아이의 뺨을 쓰다듬는 모습을 보며, 고광영씨가 말했다. "식구가 많으니 웃을 일도 생기지요. 어른도 있고, 아이도 있고, 젊은이도 있으니 사는 재미가 있습니다."
강학중 소장은 "대가족 특유의 정서적 공감대에 굶주린 현대인 가운데 오히려 전통적인 가족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형태는 바뀌어도 전통 가족주의가 바탕에 깔린 '새로운 대가족'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