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들의 숨소리가 일으킨 바람의 색깔을 볼 수 있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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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천성 시각장애우 쓰지이 노부유키에게 엄마는 ‘사과는 빨강’, ‘바나나는 노랑’이라는 식으로 색감을 가르쳤다. 그러자 어린 쓰지이가 되물었다. “그럼, 바람은 무슨 색이죠?” 당황한 엄마 이쓰코는 이 물음에 답해줄 수 없었다. 엄마는 볼 수 있는 눈이 있었지만 바람의 색깔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바람의 색깔’을 물었던 쓰지이가 스무 살 청년으로 자라 얼마 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중국의 피아니스트 장 하오첸과 더불어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쓰지이는 제임스 콘론이 지휘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했다. 독주(獨奏)라면 암보를 하고 손끝의 감각을 극대화해서 친다손 쳐도, 보지 못하는 쓰지이가 도대체 어떻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수 있을까. 인터넷으로 중계된 콩쿠르 실황 장면을 보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 물론 쓰지이가 오케스트라와 호흡하는 방식은 여타의 사람들과 달랐다. 지휘자를 힐끗 바라보며 자신의 연주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는 대부분의 연주자들과 달리 쓰지이는 무엇보다도 지휘자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쓰지이가 연주 중에 숨소리에 굉장히 예민하다는 것을 전해들은 지휘자 제임스 콘론 역시 지휘 중에 숨소리를 좀 더 크게 내는 것으로 협연자인 쓰지이를 배려했다. 숨소리도 바람이다. 쓰지이는 그 숨소리에 담긴 바람의 색깔을 간파해 훌륭하게 협연을 해낼 수 있었다.
# 연주 후에 쓰지이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치면서 러시아에 갔던 시절을 떠올리고 드넓은 평원의 풍경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드넓은 평원을 보았을 리 없다. 하지만 말 그대로 ‘풍경(風景)’ 즉 ‘바람과 햇살’ 아닌가. 볼 수는 없었어도 거기서 마주한 바람의 색깔은 느꼈으리라. 쓰지이는 바로 그 바람의 색깔을 담아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바람의 색깔이 담긴 선율에 매료당했음에 틀림없다.
# 반 클라이번 콩쿠르의 결선장인 바스 홀에 모인 2000여 관중은 쓰지이의 연주에 뜨거운 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쓰지이는 그 환호하는 관중을 직접 눈으로 볼 순 없었다. 다만 그 홀 전체에 울린 박수와 그것이 일으킨 바람의 색깔을 온몸으로 느꼈으리라. 어쩌면 쓰지이를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게 만든 진짜 힘은 바로 그 바람의 색깔을 볼 수 있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었다.
#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볼 수 없다고 지레 생각하는 것들이 내뿜는 수많은 색깔이 있다. 그래서 바람도 색깔이 있다. 그것은 저마다의 마음의 색깔이기도 하다. 사실 바람이 없는 곳은 없다. 바람이란 우리 삶에 없어선 안 될 공기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호흡, 움직임, 절규, 분노, 절망, 기쁨, 희망, 환희 그 모든 것이 우리 삶의 바람을 만들고 그것들은 분명히 저마다의 색깔을 갖는다.
# 지금 오늘 우리 삶의 바람은 과연 무슨 색깔일까. 아마도 너무 많은 색깔들이 뒤섞인 탓인지 맑고 고운 색깔이기보다는 어둡고 침침한 색깔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좋든 싫든 그것이 곧 우리 삶의 ‘바람과 햇살’ 곧 ‘풍경’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숱한 몸부림들이 크고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소용돌이치고 있다. 그 바람은 말 그대로 바라는 바들의 응집이요 절규다. 원컨대 그 누구보다도 대통령이 우리 사회에 부는 바람의 색깔을 제대로 보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민초들의 숨소리가 나지막하게 깔리면서 일으키는 바람의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거기 담긴 실망과 분노, 그럼에도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희망의 색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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