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代) 루마니아 할머니, 남편 사망 통보받고 "믿을수 없어"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사는 조르제타 미르초유(Mircioiu·74) 할머니는 지난 7일 주(駐)루마니아 북한 대사관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봉투에는 흰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한글로 "함경남도 정평군 용흥리에 거주하던 조정호가 2004년 8월 13일 사망했다"고 쓴 사망확인서였다. 북한 인민보안성(경찰) 대외사업국이 3월 17일 발급한 것이었다. 조정호씨는 1962년 생이별한 뒤 미르초유 할머니가 47년간이나 애타게 찾아온 북한인 남편이다.꿈에 그리던 남편이 사망했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을 손에 쥐었지만, 미르초유씨는 울지 않았다. 17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르초유씨는 그 이유를 말했다. "딸 미란(49)의 대학 입학과 결혼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북한 대사관에 남편이 루마니아에 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계속 애원했어요. 그때마다 대사관 직원들은 확인해보지도 않고 구두(口頭)로 '조정호는 죽었으니 그리 알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난데없이 확인서라는 걸 주며 2004년에 남편이 사망했다고요? 믿기지 않아요. 아니 믿을 수 없어요."
조씨와 미르초유씨가 처음 만난 것은 6·25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2년. 조씨는 북한의 전쟁고아 3000여명에게 해외 위탁교육을 시키는 일을 맡아 부쿠레슈티에 왔고, 당시 루마니아 사범대를 졸업한 미르초유씨는 북한 학생들을 위탁받은 '조선인민학교' 미술교사로 일하다가 조씨와 운명적으로 대면했다.
- ▲ 조르제타 미르초유 할머니가 2007년 3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자택에서 인터뷰 도중 북한인 남편 조정호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조씨와 헤어질 때(1962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미르초유 할머니는 조씨의 소식을 47년 동안 듣지 못하다가 지난 7일에야 ‘2004년 8월에 이미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았다./부쿠레슈티(루마니아)=권경복 특파원 kkb@chosun.com
2년 전 부쿠레슈티에서 미르초유씨를 인터뷰할 때, 그녀는 "죽기 전에 마지막이라도 남편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며 흐느꼈다. 그러나 17일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림도 없었고 덤덤해 더 안타까웠다. "47년간 한 번도 도와주지 않다가 사망 확인서만 달랑 보낸 북한 당국의 처사에 실망했다"면서도 미르초유씨는 한국에 대한 사랑은 변치 않았다고 했다. 한국이 그리울 때면 부쿠레슈티 시내 한식당 '코리아 하우스'를 찾아 불고기와 잡채를 즐긴다는 그는 한·루마니아어(語) 사전 출간에 매달리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