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더·파운데이션 등 탈크를 원료로 하는 가루 제품에 섞이기 쉬워
저농도라도 장기 노출땐 피부에 문제일으킬 수도
'침묵의 살인자' '죽음의 먼지' 등으로 불리는 석면이 유아용 베이비파우더에서 검출된 가운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일 뒤늦게 '베이비파우더 등 화장품과 의약품에 석면이 전혀 검출돼서는 안 된다'는 석면 규제 기준안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석면 함유량 관련 규제 기준은 '석면이 0.1% 이상 함유된 제품은 제조·사용·수입을 금지한다'(노동부 산업안전보건법)는 포괄적인 수준에 그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아무런 제약 없이 베이비 파우더나 화장품을 써왔기 때문에 소비자들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특히 파운데이션이나 트윈케이크(파운데이션과 파우더 기능을 합친 제품) 같은 여성용 화장품에도 석면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석면 파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화장품도 석면 비상
식약청 조사 결과 석면이 검출된 베이비파우더는 모두 '탈크(talc·활석·滑石)'를 원료로 하는 제품이었다. 탈크는 자연 상태에서 뱀 모양 무늬가 들어간 사문석(蛇紋石)과 섞여 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석면은 바로 이 사문석에 많이 들어가는 섬유질 광물이다. 때문에 가공을 철저히 하지 않을 경우, 탈크를 원료로 하는 화장품에 석면이 섞이기 쉽다.
탈크를 원료로 하는 화장품은 파우더·파운데이션·트윈케이크처럼 피부 잡티를 없애고 안색을 밝게 하는 데 쓰이는 가루 분말 형태 제품이다.
- ▲ 베이비파우더에서의 석면 검출로 비상이 걸린 가운데, 2일 식품의약품안전청 연구원 들이 수거한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여성환경연대 고정금숙 간사는 "자체 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내 유통 중인 파우더·파운데이션·트윈케이크 제품엔 거의 대부분 탈크가 들어간다"고 말했다. 화장품 회사는 대한화장품협회의 결정에 따라 2일부터 각자 자사 제품에 들어가는 탈크 성분 현황 파악에 나섰고, 결과는 이르면 다음 주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김형렬 가톨릭대 산업의학과 교수는 "석면폐는 석면 방직 공장에서 5년 이상 일한 노동자처럼 고(高)농도 석면에 장시간 노출될 때 주로 걸리기 때문에 1분 남짓 사용하는 베이비파우더로 인해 발병하는 경우는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석면 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이라서 바닥에 떨어진 베이비파우더 분말이 공기 중에 날리거나 하면 실내에 하루 이상 석면 성분이 남아 있게 되는데, 저(低)농도의 석면이라 할지라도 이처럼 장시간 노출된다면 악성중피종을 일으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석면은 호흡기에 침투했을 때에 한해서만 문제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전문가들에 따라 의견이 엇갈린다.
김 교수는 "피부에 발랐을 때도 미세한 석면 입자가 피부를 뚫고 호흡기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 반면, 백남원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는 "석면이 들어간 여성 파우더는 화장품을 얼굴에 톡톡 칠 때 가루가 날려 직접 코로 석면이 들어갈 수 있지만, 피부에 발랐을 때는 호흡기로 침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석면이 들어간 화장품의 위해성이 직접 밝혀진 바는 없다. 때문에 위험성이 어느 정도로 큰지,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해야 위험한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또 화장품 사용으로 인한 석면 노출 위험도 같은 것은 병원에 가서 따로 진단을 받을 수도 없는 사항이다. 따라서 증세가 나타날 때까지 소비자들은 답답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상황인 셈이다.
◆식약청, 여전한 늑장 대응
미국·유럽은 3~4년 전부터 '베이비파우더 등 영·유아 제품에 들어가는 탈크의 경우, 석면이 전혀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원료 규격 기준을 정해 관리하고 있다. 때문에 식약청이 베이비파우더 석면 사태가 터진 이후에야 석면 규격 기준을 만든 것은 전형적인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식약청은 지난 30~31일 이틀간 베이비파우더를 조사했으면서도 현재까지 베이비파우더에 들어간 석면 함유량은 모르는 실정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이번 조사에선 검출·미검출 여부만 조사했기 때문에 정확한 함유량 수치는 모른다"면서도 "파우더는 피부에 부착되거나 공기 중에 분산되기 때문에 흡입하는 양 자체가 적어 유해성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며 안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석면(石綿)
뱀 모양의 무늬가 든 사문석(蛇紋石) 같은 돌에 포함된 섬유질의 광물로, WHO(세계보건기구) 등이 지정한 '1급 발암물질'(확실히 발암성이 있는 물질). 크기가 미세해 호흡하면 바로 폐로 침투한다. 탄광 노동자처럼 석면을 많이 흡입할 경우 10~40년간 잠복기를 거쳐 석면폐(폐가 딱딱하게 굳고 하얗게 변하는 증상)나, 악성중피종(복막이나 흉막에서 발생하는 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