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모시고 사는 신노년 세대 사람들-아니, 사람들이 아니라 여성들-은 자신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천사와 악마 사이를 오간다고 하소연하다. 성장기를 유교적 가르침 속에 보냈던 세대로서 부모 모시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그들이지만 지난 3,40년 동안의 사회변화는 그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느끼게 하기는커녕 스스로 과도기의 희생양이었다는 회한에 젖게 한다. 수명의 연장,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그리고 노도처럼 닥쳐 온 개인주의의 확산은 노인부양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첫째 , 수명연장은 노인부양 기간을 대폭 늘엿다. 신노년 세대로 진입하는 여성들이 결혼생활을 시작했던2,30대였을 때만 해도 환갑즈음의 부모는 노인에 속했다. 부모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자식들도 그렇게 보았다. 이제 환갑을 지냈으니 돌아기실 날이 멀지 않은 부모를 따로 살게 한다는 건 불효 중의 불효였다. 젊은 며느리는 앞으로 한 10년 모시다가 돌아가시면 남 보기에도 좋으리라는 마음에 선뜻 나선다. 그러나 이제 며느리가 환갑이 되었는데도 시집살이는 끝나지 않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노인을 모시고 살면 따라오는 일들이 많다. 명절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일가친척들의 출입이 빈번하고 또 노인의 질병으로 인한 병원 출입도 잦게 마련이다. 반면 며느리도 나이가 들면서 체력이 저하되고 몸이 아플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젊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더 힘들고 귀찮게 생각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이러다 시부모보다 내가 먼저 죽을지 모른다는 예감에 우울해질 때가 많다.
둘째, 신노년 세대는 윗세대해 비하면 출산하는 자녀들의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기껏해야 두세 명의 아이들을 다 키워 내고 나면 대개 50세 즈음이다. 자녀양육과 가사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 큰 만큼 이 연령대부터 노인부양의 부담감은 상대적으로 더 커진다.
셋째, 개인주의의 확산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족을 최대의 가치로 여겼던 신노년 세대도 시댕와 더불어 자꾸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세상은 온통 '나'를 찾으라 하는데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며느리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억울하다. 내가 이렇게 주저앉게 된 건 전적으로 노인부양 때문이라는 생각에 젊었을 대는 다소곳이 받다들였던 효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며느리가 괴로워하는 줄도 모르고 며느리만 보면 옛날 옛적 골백번 들은 이야기를 또 하려고 드는 시어머니, 철이 바뀌엇으니 무뭐가 먹고 싶다고 당당히 요구하는 시어머니가 예쁘게 보일 리가 없다 하지만 속으로 욕하고 미워해 봤자 죄책감만 생길 뿐 .그래, 이왕 이제까지 모셨는데 마지막까지 잘해드리자. 체념이 다시 그를 천사로 만든다
악마와 천사 사이를 수없이 왕복하면서 부모를 모셨던, 혹은 모시고 있는 신노년 세대는 자식들에게만은 그런 부담을 지게 하고 싶지 않다. 도 자식들로부터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강하다. 이런 자신만만함은 그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첫 노년 세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이듦에 대하여 중에서-박혜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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