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더딘 슬픔

푸른물 2008. 4. 24. 13:21

더딘 슬픔 / 황동규( 1938~)

 

 

불을 끄고도 어둠 속에 얼마동안

형광등 형체 희끄무레 남아 있듯이,

눈 그치고 길모퉁이 눈더미가 채 녹지 않고

허물어진 추억의 일부처럼 놓여 있듯이,

봄이 와도 잎 피지 않는 나뭇가지

중력(重力)마저 놓치지 않으려 쓸쓸한 소리 내듯이,

나도 죽고 나서 얼마 동안 숨죽이고

이 세상에 그냥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대 불 꺼지고 연기 한번 뜬 후

너무 더디게

더디게 가근 봄.

'시가 있는 아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성동(九城洞)  (0) 2008.05.12
춘분(春分)  (0) 2008.04.24
물의 결가부좌  (0) 2008.04.24
독작(獨酌)  (0) 2008.04.24
목성이나 토성엔  (0) 2008.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