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향해 우아한 모습을 드러내려고
처녀의 가슴처럼 한껏 부푼 백목련
꾸밈없는 소박함 속에 흐르는 세월의 강가에 앉아
대화의 창을 여노라면
그 옛날의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던 때가
아련히 떠올라 그 글들을 한데 묶어 보았습니다.
50대가 저 멀리 피안의 세계 같았것만
흰서리가 어느새 머리 위에 뿌리고
엊그재 같던 젊음은 2세들에게 넘겨주고
관조하며 살아야 할 이 때건만
날이 갈수록 왜 이다지도 힘들까요?
성서는 믿음과 사랑과 희망으로 살아가라고 하건만
이따끔 성서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도 있군요.
실로 오래간만에 글을 띄워 봅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감상적이 되었냐 하시겠지요? 지난번에 그 옛날의 학생들을 단행본으로 묶어 보면서 느껴 본 감상입니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 속에 자리 잡은 강원도의 생활입니다만 어떤 것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런 일이 있었나 해지고 어떤 학생들은 모습이 영상이 떠오르지 않아 머리 속을 검색해 보지만 끝내 떠오르지 않고 어떤 학생들은 다시한번 만나 어떻게 변했을까 해지고요, 당시에도 하느냐고 했었지만 지내 놓고 보니 아름다운 결실이 아니었나 해지더군요.
또 권사님과의 4년에 걸친 대화는 정말 귀중한 열매였습니다. 아마도 지금 다시 보시면 내가 그랬었나 하실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모두가 30대 후반의 이야기들로 40대를 무서워하면서 쓴 글들입니다. 그런데 그 무서워하던 40대를 훌쩍 넘어 50대 중반에 들어섰으니 이 어인 일인가요?
강원도에 있을 때부터 서울에 올라와서 계속되던 거암의 갈등은 이제 이곳에서의 새로운 생활로 인해 모두 벗었습니다. 그러나 또 새로운 행복(?)에 찬 갈등을 느껴야 하는 시점입니다. 그 옛날부터 "평신도로 있지 장로는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번 주일에 장로 피택 선거가 있는데 그 중에 유력한 후보가 되고 보니 교회를 이적해 와서 신임을 얻는다는 데는 싫지 않지만 저의 처한 위치가 지금 장로를 수락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답니다. 그러니 또 고민(?)이 되더군요. 저 자신이 기독교의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주의 시련은 언제까지입니까? 지금 이것도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긴 지난번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수술을 잘해서 몸이 좋아져 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이라며 감사하고 있지만 그러나 계속되는 어려움은 심한 갈등이 되더군요. 물론 아직까지 실망은 하지 않고 살아 왔지만 어찌보면 하나님과의 계속되는 씨름이 아닐가 해지더군요? "주님, 저를 버리실 것입니까? 붙드실 것입니까?" 하고요 젊은 날의 꿈이 이렇게 부질없이 스러지는 것을 볼 때 주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낸 듯이 무엇일까? 그 옛날의 학생들의 편지를 읽어보노라면 나름대로 학생들을 사랑했고 그래서 그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가르친다는 것이 두렵고 겁이 나더군요.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이제는 정리하며, 가르치며, 후진들에게 무언가 발자취를 너멱주어야 하는데, 늘 자신만의 문제만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처량하더군요ㅕ. 그런데 여기에 평신도의 지도자인 장로란 정에게 너무나 가당치 않은 것 같더군요. 이런 속사정도 모르는 교인들은 추천할 테고, 하나님께서 모두 알아서 하실테니 順命해야 되나요?
한번 놀러 간다 하면서도 잘 안 되는군요.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편지도 안 쓰다 보니 필력이 둔해지나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자를 보내면서 큰마음(?) 먹고 이렇게 그을 띄워 봅니다. 다시 그 옛날처럼 대화의 장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이제는 기계에 의지해서 글을 쓰고 보니 옛 말대로 펜을 들었느니 글을 쓰느니 하는 말이 어색하군요
보내는 가칭 "별들의 노래"는 두권을 만들어 한 권은 대규/순덕에게,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이 바로 이 책입니다. 대규/순덕이도 내가 무척 사랑했던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어 기쁨이 크지만 세상살이에 바쁘다뵈니 연락도 만남도 어렵더군요, 순덕이는 재작년 추석 때 연락이 와서 만나고, 작년 추석 무렵에는 우리 교회로 초청행서 만나고, 그리고 이번에는 이 책을 보냈지요. 언젠가 말씀하신 대로 그 옛날의 학생들ㅇ과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면 생각도 해봅니다만,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고 보니 지금즘 어떤 모습들일까? 엣날의 청소년 모습에서 이제는 초등학생들의 아빠, 엄마가 되었을 모습들을 그려본다는 것이,
이제 저의 가정 소식을 전할까요? 아우를 봐서 예영이가 시샘하지 않느냐고 안부를 묻언 그 혜영이는 이제 대학 2년생의 성숙한 처녀가 되었고 젖먹이였던 아우는 지금 고3이 되어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답니다.
저의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려있고, 새댁이었던 아내는 이제 살림하느라 지친 40대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어 사랑스러움과 안스러움이 함께 한답니다
필영이는 복학을 했는지요? 그리고 이 집사님과 함께 건강은 어떠신지요?
너무나 오랜간만에 띄워 보는 글이어 횡성수설이 되었군요. 오늘은 여기서 줄입니다.
부활의 소망과 기쁨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7.3.19
金容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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