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 읽기

“제발 개구리처럼 앉지 마시고 여왕처럼 앉으세요”

푸른물 2015. 5. 13. 03:33

“제발 개구리처럼 앉지 마시고 여왕처럼 앉으세요”

―데니즈 두허멜(1961∼ )

―필리핀 어느 대학의 여자 화장실 벽에 쓰인 낙서
제멋에 살기를 잊지 말라, 멋 부리기를 잊지 말라.
세상은 여드름투성이 소녀에게 보상하지 않는다.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머리채에 광채를 내는 샴푸를 사라.
머릿결이 직모라면 파마를 해라.
제멋에 살기를 잊지 말라, 멋 부리기를 잊지 말라.
숨결은 박하 향이 나도록 하고 이는 희고 깨끗이.
손톱은 매니큐어 발라서 반짝이는 진주 열 개로.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웃음 지어라. 특히 기분이 더러울 때.
차를 운전하면서 급회전할 때에는 머리를 숙여라.
제멋에 살기를 잊지 말라, 멋 부리기를 잊지 말라.
욕망에 자신을 내맡기지 말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해야
사교춤 출 때 치맛자락을 추켜올릴 수 있지.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교수와 혼인하지 말고 학장하고 해라.
왕하고 혼인하지 백작하고는 하지 마라.
제멋에 살기를 잊지 말라, 멋 부리기를 잊지 말라.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한국어판으로 발행한 ‘2006 미국 올해의 가장 좋은 시’에서 옮겼다. 이 시선집의 편집자로 시를 선정한 빌리 콜린스(시인)가 쓴 서문 제목이 ‘시의 건초더미에서 찾은 75편의 바늘’이다. 해마다 거듭 탈락된 ‘건초더미’ 시인들의 불쾌감을 언급하며 그는 ‘제목은 기껏해야 마케팅 전략일 뿐’이라고, ‘그럭저럭 읽을 만한 시’라는 시집에 독자의 손이 선뜻 가겠느냐고 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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