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시 읽기

가장의 체면 / 김종목

푸른물 2014. 11. 17. 04:05
가장의 체면 / 김종목 가만히 누워 있어도 욕먹는 세상이다 무언가 몸을 움직여 돈푼이라도 벌어 와서 식솔들의 목구멍에 밥이라도 떠 먹여야 할 텐데 꿈이나 잔뜩 베갯머리에 쌓아놓고 누웠으면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마누라 잔소리가 바가지로 쏟아지고 아이들의 눈빛이 번쩍번쩍 칼날이다 가장은 잠시도 등 붙이고 누워 있으면 안 된다 죽자 사자 일어나서 움직여야 하고 몸이 가루가 될지라도 돈을 벌어 와야 가장이 된다 가만히 있으면 가장에서 밀려나고 남편이나 아버지라는 이름도 위태위태해진다 발바닥이 불바닥이 되도록 움직여야 하고 체면이고 위신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돈을 향해 하이에나처럼 돌진해야 한다 그리하여 푸른 배춧잎을 물고 와 방바닥에 주르륵 쏟아 놓고 그 위에 누워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장의 체면이 서고 남편과 아버지의 끗발이 선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욕을 먹지 않으려면 돈 냄새 풀풀 나는 배춧잎 위에 떡하니 누워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