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동시

나무의 장갑 / 선용

푸른물 2014. 11. 7. 07:12

입력 : 2013.01.10 23:30

 

나무의 장갑

나무의 장갑/ 선용

 

밤사이 예쁘게
누가 짜 주었지

손 시린 겨울나무
털장갑 꼈네

어젯밤에 윙윙
그리도 울더니

오늘 아침 손 내밀고
자랑을 하는

겨울나무 털장갑
누가 짜 주었나

발 시린 참새도
만져보고 가고

아이들 눈빛도
머물다 가고

―선용(1942~ )

겨울이면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이 털장갑이었다. 그 중에도 엄마가 뜨개질해서 짜 주는 털장갑이었다. 장갑 하나만 끼고 나가면 매서운 추위도 거뜬히 견뎌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장갑 없이 겨울을 나야 했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겨울나무 등걸처럼 손이 트고, 더러는 피가 나기도 했다.

손 시린 겨울나무가 털장갑을 꼈다. 밤사이 내린 눈이 털장갑을 짜 준 것이다. 겨울나무가 털장갑을 자랑하자 참새들도 만져보고 가고 아이들 눈빛도 머물다 간다. 참새들도 아이들도 나무의 털장갑이 부러워서 손에 한번 껴 보고 싶었으리라. 나무들은 아마 눈이 짜 준 털장갑을 끼고 해를 눈덩이처럼 굴릴 것이다. 그 나무 아래서 아이들은 눈덩이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 것이다.

'가슴으로 읽는 동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자리 / 장만영  (0) 2015.11.12
잠자리 /이근배  (0) 2014.11.06
들길/ 전원범  (0) 2014.09.16
가을 /박선미  (0) 2014.09.16
나무들의 약속 / 김명수  (0) 2014.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