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길 / 전원범
자전거 바퀴에 감겼다가
풀리는 시골길.
길을 따라 나서면
소근거리는 이야기가 들린다.
촘촘히 익어가는 옥수수 이야기
풍금 소리로 밀려오는
나락들의 이야기
꼬투리마다 여무는
콩들의 이야기.
가을이 내려오는 외길.
산허리를 돌아가면
길이 머무는 곳마다
아, 여름의 남은 불씨가
활활 타고 있는
고추밭
시디신 가을이 익어가는
능금밭.
ㅡ전원범(1944~)
들길은 아이들이 흰 구름과 누가 빨리 가나 내기라도 하듯 달려가는 길이다. 하굣길 아이들이 신발주머니를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집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때로는 어머니가 한 소쿠리 감자를 캐어 머리에 이고 오는 길이기도 하다. 그런 들길에 여름내 염소처럼 얼굴이 까맣게 탄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면 가을이 시작된다.
가을이 시작되는 들길엔 이야기로 가득하다. 촘촘히 익어가는 옥수수, 풍금소리로 밀려오는 나락들, 꼬투리마다 여무는 콩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여름의 남은 불씨'들은 고추밭에서 활활 타고 능금은 빨갛게 익어간다. 가을은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이 달려가는 들길에 맨 먼저 찾아온다. 아이들처럼 즐겁게 자전거 은빛 바퀴를 굴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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