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세상의 절반 / 진은영

푸른물 2014. 11. 4. 06:48

세상의 절반 - 진은영(1970~ )

세상의 절반은 붉은 모래

나머지는 물

세상의 절반은 사랑

나머지는 슬픔

붉은 물이 스민다

모래 속으로, 너의 속으로

세상의 절반은 삶

나머지는 노래

세상의 절반은 죽은 은빛 갈대

나머지는 웃자라는 은빛 갈대

세상의 절반은 노래

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

세상의 절반. 참 많다. 나머지. 참 적다. 놓치고 있었던 것. 나머지는 세상의 또 절반. 세상의 절반. 붉고 따갑다. 이를테면 모래, 사랑, 삶. 나머지. 투명하게 출렁인다. 깊이를 알 수 없다. 이를테면 물, 슬픔, 노래. 따갑고 투명하고 붉고 출렁이는 것들은 스민다. 서로의 아주 다른 속으로. 아주 모르는 서로의 속으로. 죽은 갈대의 입장에서 보면 나머지는 웃자라는 갈대. 그러나 모두 은빛을 가졌다는 것. 허공과 허공 사이에서 서걱거리는 시간이었다는 것. 세상의 절반은 노래. 나머지는 안 들리는 노래. 안 들리는 노래는 잘 들어야 하는 노래. 낮은 곳으로, 구석으로 귀 기울이면 들리는 나머지의 노래. 나머지는 세상의 절반. <황병승·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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