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등굣길 아침밥의 단골 반찬…
거기엔 엄마 사랑이 담겨있었죠"
예전 고향 텃밭은 깻잎 천지… 한 장 떼서
숟가락에 얹어줄 때 마음도 건네주는 '소통의 도구'
소설에도 깻잎 먹는 장면 넣어…
각계 명사들이 가슴에 품고 있는 간절한 맛을 풀어내는 '내 인생의 맛'. 일곱 번째 주인공은 소설가 신경숙씨입니다. 깻잎에 대한 추억을 나눈 신씨와의 인터뷰를 이야기하듯 독자들께 들려 드립니다.
음식은 사람에 대한 배려와 접촉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보면 깻잎은 마음을 건네기에 참 좋은 음식이에요. 깻잎을 먹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죠. 한 장 떼서 그 사람의 숟가락 위에 얹어줄 수 있고, 다른 반찬 위에 올려주기도 하니까요. 떼다가 잘 안 되면 옆에서 같이 떼주죠. 아니면 아래쪽 깻잎을 눌러주기도 하고요. 여러 장 올려주다 보면 서로 기분도 좋아지는 특별한 느낌이 있죠.
제가 이번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도 깻잎을 넣었어요. 주인공인 윤미루하고 정윤이 깻잎을 떼서 서로의 밥숟가락 위에 얹어주는 장면이었죠. 정윤이 처음으로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타인에게 말한 것도 깻잎 반찬을 먹던 그 밥상이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사이엔 깻잎이 소통의 도구 같았다'고 느끼고요.
그래서 제가 먹을거리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깻잎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고향 텃밭에 많이들 심었지요. 모양이 얌전하고 예쁘죠. 바람이 불면 솔솔 나는 향도 참 좋더라고요.
겨울에도 먹으려면 장아찌를 담갔지요. 잎을 하나씩 똑똑 따서 따뜻한 물에다 씻어 말리고 차곡차곡 개요. 그걸 된장 담글 때 사이사이에 넣어두면 된장 향이 깻잎에 사악 배는 거죠.
제가 어렸을 때 엄마는 다른 건 몰라도 아침밥을 안 먹고 학교에 가면 굉장히 싫어하셨어요. 아침부터 엄마하고 실랑이하지 않으려면 지각을 하더라도 밥을 먹고 가야 했어요. 안 먹고 가면 기어이 학교에까지 밥을 싸 오셨어요. 십 리 떨어진 곳을요. 그 거리를 왕복하려면 엄마는 언제 밥을 드시고 언제 일을 하시겠어요. 그러니까 늦어도 먹고 나서는 게 엄마를 돕는 거죠. 빨리 먹으려고 뜨거운 밥을 찬물에 말았어요. 그럴 때 같이 먹기 제일 편한 게 깻잎이었어요. 때로는 엄마가 깻잎 주먹밥을 싸서 입에 넣어주기도 하셨죠.
- ▲ “어머, 이거 정말 맛있네요.”소설가 신경숙씨는 깻잎 장아찌로 밥을 싸먹으며 몇 번이나 맛있다고 말했다. 음식을 만든 이에 대한 고마움은 꼭 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저희 집이 6남매인데, 제 위로 다 남자 형제라 제가 주로 엄마하고 부엌에 있었어요. 엄마가 만든 걸 그릇에 담기도 하고 옆에서 자잘한 일을 돕기도 했죠. 엄마는 시골 분이고, 누군가에게 말로 '사랑한다'고 표현하지 않는 분이에요.
'사랑한다'는 그 마음을 전한 것이 말이 아니라 음식이었죠. 저는 15살 때부터 엄마하고 떨어져 살았어요. 어쩌다 고향집에 내려가면 엄마가 따뜻한 음식을 차려주고 먹으라고 하셨죠. 먹는 거 쳐다보면서 흐뭇하게 바라보시고. 그게 엄마 식의 '사랑한다'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 집 식구들은 함께 밥상에 앉으면 아주 시끄럽답니다. 맛있는 걸 권하면서 서로 숟가락 위에 얹어주느라고요. 그리고 항상 '맛있다'는 말을 잊지 않아요.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이 있는데 과묵하게 숟가락질만 하면 고생해서 만든 사람이 얼마나 맥빠지겠어요. '이거 먹어라' '아이 맛있다'하느라 시끌시끌한 게 저희 집 식사시간이에요. 그렇게 함께 밥을 먹는 순간이 서로에 대한 가장 깊은 표현이 아닐까요.
음식은 만드는 중에도 위로하고 쓰다듬어주는 힘이 있어요. 저는 엄마의 사랑을 도마질 소리로도 느꼈거든요. 살다가 힘들었다가도 어느 날 고향집에 돌아가면 다음 날 아침 제일 먼저 듣는 소리가 엄마의 도마질 소리였어요. 아침 선잠에 그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누워서도 엄마 손이 다 보여요. 엄마는 신기하게도 칼 하나 도마 하나로 모든 요리를 다 하시죠. 요즘에는 마늘 찧는 기구도 따로 나오고 야채 모양 내는 도구도 있지만, 엄마는 어슷어슷 잘근잘근 뚝딱 잘도 만들어내시죠. 온 가족이 함께 살지 않는 사람은 대부분 알 거예요. 도마질 소리만 들어도 행복해지는 그 마음을.
저는 다음 달에 미국 뉴욕으로 떠나요. 남편(명지대 문예창작과 남진우 교수)이 안식년이라 함께 가요. 뉴욕은 저하고는 완전히 다른 도시라는 느낌이 들어요. 공연을 자주 보고 여행도 많이 하고 자유롭게 1년을 보내다 오려고요. 이렇게 오래 한국을 떠나보는 건 처음이에요. 많이 걸어보고 많이 느끼고, 그러다 보면 새 소설이 떠오를 수도 있겠죠?
● 소설가 신경숙은…
196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 때 상경해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영등포여고 산업체 특별학급을 거쳐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겨울우화'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2008년 11월 발표된 '엄마를 부탁해'가 출간 10개월 만에 '한국 문학 출판 사상 최단 기간 100만부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에 충격과 영감을 받아 '어두워지기 전에'(가제)라는 소설을 써놨다. "거대한 폭력을 딛고도 삶은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 깻잎 장아찌는… 된장·간장에 절인 들깻잎, 칼슘·인·미네랄 등 풍부
장아찌는 제철 야채를 된장이나 간장 혹은 고추장에 넣어뒀다가 삭혀서 먹는 전통 발효 식품이다. 간장이나 고추장과 같은 장(醬)을 일컫는 '장아'라는 한자어와 김치를 뜻하는 말 '지'가 더해져 생긴 단어다. 종류가 200가지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부터 만들어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학자 이규보가 '동국이상국집'에서 '좋은 장을 얻어 무를 재우니 여름철에 좋고 소금에 절여 겨울철에 대비한다'라고 쓴 것을 장아찌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 본다. 간장·된장·고추장 외에는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원재료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
장아찌 중에서 가장 즐겨 먹는 것이 깻잎 장아찌다. 우리가 즐겨 먹는 깻잎은 정확히 말하면 들깨의 잎이다. 들깻잎은 고기의 느끼한 맛과 누린내를 없애주기 때문에 쌈 재료로 자주 나온다. 철분이 많이 들어 있고, 칼슘·인·칼륨·미네랄도 풍부하다.
깻잎은 얇아서 간이 쉽게 들기 때문에 된장에 박아 장아찌를 만들 때는 다른 채소보다 소금을 약하게 해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 충남 금산 추부면에서 나는 '추부 깻잎'은 우리나라 깻잎 생산량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잎의 뒷면이 자색(紫色)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각 지역 특산물을 소개하는 정보화마을중앙협회 정효동 회장은 "추부 일대에서 650여 농가가 깻잎을 재배한다"며 "일교차가 커 잎이 두껍고 향이 진한 깻잎이 생산된다"고 말했다.